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2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이재용 석방'을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박지원 인턴기자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판결을 앞둔 25일 서울중앙지법 인근은 서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시민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판결을 1시간 30분 앞둔 오후 1시. 법원 진입로에는 이 부회장의 무죄를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가 한창이었다.
마이크를 든 중년 남성이 "무죄"를 외치면 시민들이 "석방"을 외치는 일이 반복됐다.
맞은편에 모인 시민들 역시 이에 질세라 "유죄" 구호를 외쳤다.
이 부회장의 무죄 판결을 기다린다는 70대 여성은 "삼성은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들어가고 싶은 곳"이라며 "기업 총수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으니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이적단체 처단' 수단으로 가리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2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기다리는 70대 여성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이적단체 처단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있다./박지원 인턴기자
재판을 기다리는 두 집회 간 열기가 고조되면서, 물리적인 충돌 위기도 있었다.
노동당 관계자가 '삼성 이재용 엄중 처벌은 국민의 명령이다'라는 현수막 앞에서 마이크를 꺼내자, 맞은편에서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몰려들어 경찰이 제지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선고에 대비해 배치된 경력은 9개 중대 720명이다.
법원과 가까운 서초역 8번 출구와 교대역 10번 출구 사이에는 경찰 기동대 버스 13대가 산개해 있었다.
경찰 측은 마땅한 주차 공간이 없어 세웠을 뿐, 차벽 개념은 아니라고 밝혔다.
◆청주서 상경한 70대 "집행유예 바라지만 실형도 의미 있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법원 앞 광경은 인근에서 일하는 직장인도 놀라게 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로 북적이는 한 건물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중년 남성은 "여기서 10년 일하면서 오늘 같은 광경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판결을 30분 앞둔 오후 2시. 법정 앞은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청주에서 왔다는 70대 남성은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으면 좋겠다"면서도 "죄를 지은 것은 맞으니 유죄(실형)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태극기 집회를 향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따라 애국하는 심정으로 나온 것"이라면서도 "무죄를 외치면서 호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평소와 달리 경비가 삼엄해진 법원 앞에서 돌아서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법원 직원 네 명이 출입구를 가로막으며 방문 목적을 묻자, 태극기 집회 참가자로 보이는 남성이 불쾌감을 드러내며 자리를 떠났다.
법원은 이날 선고가 열리는 417호 방향 통로 일부를 폐쇄했다.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이 인쇄된 종이를 밟으며 지나가고 있다./구서윤 인턴기자
◆"억울해서 잠 안 온다" 경찰과 몸싸움도
태극기 물결은 판결이 시작된 2시 30분부터 한 시간 내내 일희일비하며 출렁였다.
이 부회장의 양형 사유에 대한 재판부의 설명이 속보로 전해질 때마다,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과 탄식을 내뱉었다.
선고 초반 이 부회장의 일부 혐의가 무죄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집회 참가자들은 "만세"를 외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잠시후 재판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하자, 태극기를 잡은 수백개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한 여성은 "대통령 잡으려고 이재용을 잡는다"며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이 '징역 5년' 선고로 마무리되자, 태극기를 든 일부 시민은 욕설과 함께 경찰과의 몸싸움을 이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성조기와 함께 펄럭이는 태극기를 향해 "저렇게 하면 무슨 이득이 있느냐"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 부회장의 판결을 기다리던 여성이 태극기 집회현장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고 절하고 있다./박지원 인턴기자
자신을 금속노조 삼성전자 서비스 부지회장이라고 소개한 곽형수(43) 씨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곽씨는 "삼성 총수가 실형 선고 받은 모습을 보니 세상이 바뀌는듯하다"면서도 "저지른 죄에 비해 형량이 가벼워, 법의 형평성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국민의 힘으로 컸으니, 이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이 부회장의 유죄를 주장했던 노동당은 선고가 시작되면서 자리를 떠났다. 태극기 집회는 선고가 끝나고 30분 뒤인 4시께 해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