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의 파이팅은 눌은밥에서 나온다. 노르스름한 밥 알갱이들이 숭늉 안에서 보글거리는 눌은밥! 먹음직스런 색감도 그러거니와 그 눋는 냄새의 구수함에 오감(五感)이 먼저 알고 깨어난다.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샘솟는 게 파이팅을 외치는 것 같다. 아침마다 그 호사로움에 한 그릇은 뚝딱이다. 영양성분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러나 내 생활 영역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활력에 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단조롭고 후줄근한 삶에 의욕이라는 불을 댕긴다.
사전에서는 눌은밥을 '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에 물을 부어 불려서 긁은 밥'이라고 풀이한다. 쉽게 말해서 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이 누룽지이고, 거기에 물을 부어 불려서 긁은 밥이 눌은밥이다. 그러나 내 일상에서 느끼는 개념은 그 사전 밖에 있다. 눌은밥에는 김이 모락거리는 숭늉과 노릇노릇한 밥 알갱이들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삶의 무게를 풀어주는 따스함과 넉넉함, 위안, 정성, 감동, 고향 같은 상념들이 한데 어우러져 눌은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눌은밥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개념 그 이상이다. 호호 불어가며 한 술 뜨면 훈훈해지는 것이 마음마저 따스해진다. 어이쿠 시원하다! 눈꺼풀은 여전히 무거운데 입에선 이런 감탄사가 터지곤 한다. 눌은밥을 먹는 시간은 적어도 내겐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시간이며, 오늘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의 시간이다. 하루를 개시하는 팡파르다. 눌은밥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걸까.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낼 실마리를 눌은밥이 따스하게 풀어준다고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그게 한 끼 식사가 되겠냐고 누가 물음을 해오면 주저 없이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눌은밥에는 식욕의 끄트머리에서 서성거리는 허전함까지 채워줘야 마음이 놓이는 애틋함이 배어 있다. 말하자면 맨 마지막까지 남아서 한 끼 식사를 끝마무리해야만 부엌문을 닫는 우리네 밥상문화 본연의 유전자가 거기에 흐르는 것이다. 먹은 거 같지도 않게 먹었는데도 포만감을 느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걸쭉한 것이 포만감을 완성하면서도 속이 편한 게 눌은밥의 본질이다.
우리 집 눌은밥은 양은냄비로 만들어낸다. 깜짝 놀랄만한 특별한 레시피는 없다. 그저 냄비 바닥에 얇게 눌린 밥을 약불로 5분만 눋게 하면 맛난 누룽지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물을 자작하게 넣어 끓이면 숭늉과 함께 눌은밥이 완성된다. 가마솥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꼬들꼬들한 식감도 별미이지만 입맛을 당기게 하는 건 구수한 냄새와 노르스름한 빛깔이다. 그렇다 해서 센불에 오래 태우면 그 황금 비율의 빛깔과 구수함이 나오지 않는다. 이게 레시피의 비책이다.
눌은밥은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 굳이 계절에 맞서지 않아도 땡볕 여름에는 오히려 속을 시원하게 해주고, 얼음 겨울에는 속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맛은 사계절 내내 한결같다. 식으면 식은 대로 그 나름의 식감이 있다. 유별난 반찬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김치를 곁들이면 칼칼한 맛으로, 비릿한 생선은 고소한 맛으로 재탄생시킨다. 나물이며, 풋고추며 어떤 찬이든 맛있게 받아들이고 소화해낸다. 간장 한 종지를 만나도 아침을 개운하게 하는 신통력을 부린다.
나는 눌은밥을 먹으면서 지혜를 배운다.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줄 아는 배려와 포용력을. 세월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 변함없는 맛에서, 큰 바람과 큰 풍랑을 견뎌내는 한결같은 뚝심을 배운다. 인스턴트가 세상에 쏟아져 나와도 눌은밥은 늘 그 자리에 있기에 마음의 고향 같은 음식인 것이다. 오늘 아침 눌은밥을 먹으며 이만한 고부가가치 음식이 있나 싶다. 포만감에, 활력과 지혜의 가치들이 보태져 약동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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