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자수(自作自受)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다는 말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의 유행어 '금수저'라는 말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남의 잘사는 모습이나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부러워만 하는 것은 실익이 없고 이치에 맞지도 않다. 최소한 업의 연기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공연히 남의 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혜안(慧眼)이 열리지 않아서 보지 못할 뿐이지 이 세상에 공짜란 없으며 세상살이의 복도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생에 받는 복은 전생의 결과거나 지금 이 생에서 지은 복력의 결과인 것은 경전에도 분명히 나와 있다. 법구경의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欲知全生事 今生受者市)라는 말이 그 대표적인 경구다. 석가모니부처님도 복을 쌓는 일과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고행 끝에 실명한 아나율 존자가 옷을 기우려 했을 때 눈이 보이지 않아 바늘에 실을 꿰는데 애를 먹자 자청해서 도와주신 분은 다름 아닌 부처님이다. 아나율이 황송하여 만류하였으나 부처님께서는 "나도 끝없이 복(福)을 닦아야 하느니라. 이 세상의 모든 힘 중에서 복의 힘이 으뜸이며 누구나 그 복의 힘으로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생과 사를 뛰어넘는 깨달음을 얻으셨으며 인간과 천신의 옹호와 공양을 받으시는 부처님조차도 공덕 쌓는 일을 매우 중히 여겼다. 물론 보시공덕이나 여타 선업을 쌓을 때는 당연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듯 한다면 그 공덕은 더욱 클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 부른다. 보시는 반드시 재물로써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재물이 부족하면 따뜻한 마음을 내어 얼굴표정을 환하게 하며 미소를 짓는 것도 화안(和顔)보시라 하여 소중히 여긴다. 또한 보시 중에서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돕는 일도 그 공덕이 몹시 크지만 진리를 여실하게 보며 생사고뇌를 해탈하게 만드는 가장 수승한 보시는 법보시(法布施)라고 되어 있다.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보시라 보신 것이다. 또한 절에서 종종 있게 되는 법당 창건이나 여러 불사에 동참하는 것은 선근공덕(善根功德)과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닿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어느 사찰을 지나더라도 기와불사라도 동참하는 그 마음은 몹시 귀한 마음이다. 부자는 마음을 크게 내는 것이 맞다. 부자가 된 것도 자신의 공덕 탓이지만 그러한 공덕을 쌓아 부자가 된 것을 감사하며 올리는 보시는 샘물이 마르지 않게 하는 공덕이 있다. 기와장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되고픈 그 마음엔 분명 빈녀일등과 같은 공덕이 쌓임을 굳게 믿고 있다./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