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뭔가 조금이라도 잘 하는 일이 있으면 남들 앞에서 뽐내고 싶고 조금이라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특히 인정욕구가 강해서인지 옷이 날개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옷치장과 명품에 목숨을 거는 일도 많다. 외모지상주의 역시 대단하여 성형수술 또한 세계에서 1위라고 할만큼 강남의 내노라 하는 비싼 땅의 건물에 통째로 성형외과 병원들이 들어설 정도다. 그래서인가 우리나라로 성형원정을 오는 동남아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점점 비중이 커지는 의료사업의 활황 측면에서 보자면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긴 하다. 아무튼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과시 욕구와 더불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의식이 너무나 커서 도대체 우리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근원이 어딘지 때때로 의아한 생각이 드는 적이 적지 않다. 이렇게 자신을 위한 투자에는 아끼지 않는 습성을 지닌 것에 비하면 남에게의 과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부나 보시문화는 어떤가. 미국의 경우 큰 부자들 가운데 자신은 소탈하여도 통 큰 기부자들이 많은데 그런 까닭일까? 아직도 미국이 세계질서를 이끄는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는 이유가 이러한 기부문화로 대변되는 보시공덕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는 적도 있다. 세계적으로 기부문화가 당연한 정서는 서양 사람들의 특질인데 특히 나 미국부자들이 앞서가기 때문이다. 법구경과 같은 불교의 주옥같은 경전에서도 단적으로 "업(業)만이 자기 재산입니다."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업이란 바로 다름 아닌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말과 행동을 지칭하며 그러한 말과 행동의 결과로서 일어나게 되는 인과적 결과까지도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업연(業緣)이라는 말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업은 짓는다는 뜻이다. 불교의 용어들 가운데 이 업만큼 자명하고 두려운 말이 없을 정도다. 살아가는 존재들이 특히 우리 인간들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하지만 이 업의 연속성은 전생으로부터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명을 마치고 난 후의 연속선 상에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게 받게 되는 응보(應報)의 과정인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인 까르마(karman)의 의역으로 이 업의 특징은 그 누구도 대신해서 받아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며 이 업의 작용인 업력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고 하는 것이라 엄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니 명심할 일이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행하고 말하고 하는 업(業)만이 금생과 내생의 복력을 담보할 자기 재산임을!/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