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노조원들이 영업점 책상에 '근조(謹弔)' 표시를 한 검정색 풍선을 세워뒀다./씨티은행 노동조합
사(使)측, 디지털 시대 발맞춰 점포 80% 축소 예고…노(勞)측 "고용불안, 소비자 피해" 주장
'근조(謹弔)'.
한국씨티은행 영업점 직원들의 책상 위에 있는 검정색 풍선. 사라질 점포들, 퇴사할 직원들, 이탈할 고객들에 대한 자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디지털금융 시대에 발맞춰 전체 점포의 80%를 줄이겠다는 사측의 방침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사측은 '점포 축소는 경영진의 권한'이라며 물러섬이 없다.
한 금융노조 관계자는 "씨티은행이 4차 산업혁명의 시험대에 가장 먼저 올랐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머지않아 은행권 전체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한국씨티은행 점포 폐점 계획./씨티은행 노동조합
◆ 인구 수백만명인데…점포는 '0(제로)'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은 최근 노조에 투쟁명령 3호를 내리고 이달 중 총파업을 계획 중이다.
씨티은행의 대규모 점포 축소에 따른 조치다. 씨티은행은 연내 소비자금융 영업점 126개 중 80%에 달하는 101개 점포를 통폐합하고 25개만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서울 13개, 수도권 8개, 지방 4개 점포만 운영된다. 여기에 기업금융센터 7개를 포함하면 통합 후 씨티은행 지점은 전국에 총 32개만 남는 셈이다.
지역별로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제주도, 충청남도, 충청북도는 영업점이 '제로(0)'가 된다. 광주시, 대구시, 대전시, 부산시, 인천시는 지역별로 1개씩만 점포를 운영한다. 이들 지역은 모두 수백 만명의 인구가 밀집된 곳이다.
특히 인구수가 1300만명에 달하는 경기도는 43개 중 83.7%인 36개를 정리한다. 인구 1000만명에 달하는 서울은 49개 중 73.4%인 36개를 없앤다. 300만명 인구가 밀집한 인천시도 15개 점포 중 1개만 남기고 전부 사라진다.
씨티은행이 파격적으로 점포를 줄이는 이유는 비대면 거래 급증 때문이다. 씨티은행이 고객의 거래 형태를 분석한 결과 95% 이상의 고객이 비대면 거래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미 지점 밖의 거래가 대부분인데 지점을 계속 운영하는 건 고객 중심의 서비스라고 볼 수 없다는 것. 그러나 노조는 이런 사측의 선택으로 인해 벌써부터 고객의 이탈이 가시화됐다는 입장이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1일 "사측이 부자고객인 WM(자산관리)고객만 대상으로 손쉬운 수익만 추구하고 있다"며 "이는 시중은행으로서 금융서비스 제공 의무와 사회적 공공성을 무시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번 점포 축소 이슈가 나온 이후 하루에 5명 가량이 계좌 해지를 하고 있으며 주요 고객인 5000만원 이상 고객은 1500명 이상이 이탈했다.
반면 씨티은행 측은 "7월 폐점 대상 지점 거래 고객에게 관련 안내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후 불만을 표시한 고객 비율은 0.0008%에 불과했다"며 "고객들은 비대면으로도 충분히 기존거래가 가능하며 불편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규모 해고 불가피" vs "인력감축 없다"
점포 감축에 따른 '무더기 해고'도 우려되고 있다. 폐점되는 곳에 근무했던 은행원 중 상당수가 서울의 '고객가치센터', '고객집중센터'로 재배치되는데 폐점 직원 1000여명을 모두 수용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노조는 지방폐점 점포 직원의 대규모 서울 인사이동에 따른 고용불안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신설되는 고객가치센터와 고객집중센터의 업무 내용도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이 센터들은 전화·인터넷·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해 고객에게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사측에서는 이 센터를 통해 은행원의 전문적인 상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러나 노조 측에선 "사실상 콜센터 업무"라며 반감을 드러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해당 센터 업무에 대해 파일럿테스트를 해 왔는데, 기존 콜센터 업무와 비슷했다"며 "고객들이 전화 상담할 땐 아주 기본적인 상담을 요청하고, 전문적인 상담을 요청하진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도급직) 대량 해고에 대한 가능성도 제기됐다. 노조 측은 현재 TM부(280명), 씨티폰(250명), 신세계(60명) 등 총 600여명의 도급직이 하는 일을 고객가치센터 등에서 수행하게 되면 도급직원이 대량 해고될 수 있다며 "새 정부의 일자리 중심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사측은 "점포 축소 과정에서 은행은 임직원의 고용 보장을 약속했으며, 희망퇴직을 포함한 인적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점포 축소는 경영진의 권한"이라며 계획대로 이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이유로 노조는 영업점 축소에 반대하며 정시출퇴근, 모든 회의 참석금지, 디지털뱅킹·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방카슈랑스 권유 금지 등이 담긴 투쟁명령을 3호까지 내렸다. 박진회 은행장에 대해선 이번 주 내 '불법하도급, 불법 파견' 등을 이유로 고발을 준비 중이며 6월 중순엔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