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보복 제재조치가 국내 주식시장을 흔들고 있다. 중국 정부는 롯데그룹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조치 중 가장 강한 한국 여행상품 판매 중단 조치를 내렸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무역제재까지 이어질 개연성은 높지 않지만 불매운동·관광자제운동 등 반한감정에 기인한 악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관련 소비재의 부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중국계 자금의 이탈로 한국 금융시장이 뿌리채 흔들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계 자금까지 이탈할 때는
하나금융투자는 중국의 사드관련 제재가 예상했던 4단계 중에서 이미 2단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1단계는 비관세와 인허가 영역의 견제(화장품·음식료·2차전지)와 채널 차단(비자·단체여행·컨텐츠), 2단계는 중국 내 한국기업, B2C 기업에 대한 견제 (환경규제·법규·세무·노무), 3단계는 금융자본 및 투자자금 이탈, 장기플랜 재협상(일대일로·한중FTA) , 4단계는 무력시위와 직접적인 수출입 통제 가능성이다.
하나금융투자 김경환 연구원은 "지금까지 제재는 '정부와 관영언론이 주도했고 민간이 무감각했다'면, 2단계부터는 장기 선전 효과와 합쳐지며 민간부분까지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사드 사태가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경제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악의 경우 지난해 연초 때와 같은 중국계 자금의 이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한미 정부가 5월 말까지 사드 배치를 완료한다고 합의한 상황으로 추가적인 보복 조치가 나올 수 있다"면서 "중국이 보복을 멈추고 완화적인 입장으로 돌아서는 건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사드 배치를 위한 부지 계약 체결을 계기로 중국내 반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중국계 자금의 국내 이탈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피시장에서 중국계 자금의 보유비중은 1.8%(2017년 1월 기준)에 불과하지만, 중국계 자금은 금융위기 이후 주 매수주체였다. 2008년 이후 코스피 전체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3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24조원이 미국계 자금이었고, 중국계 자금은 7조6000억원으로 세번째로 많다. 하지만 사드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계 자금이 발을 빼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영향력은 더 크다. 중국은 전체 원화채권(2월말 기준 96조원)의 18%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조6000억원 정도 원화채권을 순투자했다.
특히 중국이 보복에 나서면 올해 초부터 적용하는 '위안화 바스켓'은 자칫 칼날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중국이 원화 편입 자산을 늘리려고 국내 금융시장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투자규모가 커지는 만큼 자금의 급속한 유출 위험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부문은 불확실성이다. 어떤 리스크 요인이나 불확실성 변수라도 일정이 정해져있거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다면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 이슈는 다르다. 중국 정부가 언제, 어떤 산업에, 어떻게 제재조치를 가할 지 가늠하기 어렵고, 공식적인 규제보다는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조치를 강화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산업과 기업의 실적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약화되면서 밸류에이션은 디스카운트 받을 수 있다"면서 "한국 정부의 강경한 사드배치 방침에 비해 중국과 협상이나 중국 제재에 대한 대응책이 부재한 상황이라는 점도 중국 소비관련주의 디스카운트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한감정' 격화땐 걷잡수 없어
가장 큰 걱정은 민간 차원에서 반한감정이 높아지며 불매운동 등의 악재가 벌어질 가능성이다. 당장 중국 소비관련주, 중국 매출비중이 높은 화장품, 카지노, 호텔, 면세점 관련주는 피해가 우려된다.
2010년과 2012년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분쟁으로 인해, 2016년 대만은 신진당의 차이잉원 총통 당선으로 인해 중국의 무역제재조치를 당했다. 당시 중국인 관광객은 40% 이상 급감했고,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데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사드배치가 결정된 시기인 지난해 7월 한국으로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은 91만7000명에 달했지만, 2017년 1월에는 56만5000명으로까지 줄었다.
이는 중국 요우커 소비에 노출도가 높은 화장품, 호텔, 카지노, 면세점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박상현 팀장은 "중국 측 제재가 언제 그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며 "한국 제품 불매운동으로 확산될 경우에는 사드와 무관한 업종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장쑤(江蘇)성 치둥현의 롯데백화점 부근에 신원 불명의 건달들이 나타나 '롯데가 중국에 선전포고했으니 중국을 떠나라'를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한 뒤 근처의 한국 자동차를 부쉈다. 자동차는 한중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민 연구원은 "경기민감주, 수출주인 IT, 자동차, 철강, 화학 업종의 중국 매출비중은 중국 소비관련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상황이다"면서 "중국의 사드 보복 제재가 강화되거나 반한감정 고조로 인한 불매운동이 확산될 경우 IT, 자동차 업종 또한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IT, 자동차 업종으로까지 중국발 불확실성에 흔들릴 경우 중국 제재가 코스피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