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지난해부터 성과연봉제 도입, 2018년 시행 목표…노사 의견차 여전, 일단 관망 추세
박근혜 정권이 밀어붙인 은행권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답보 상태다. 지난해 국내 주요 은행들이 이사회를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으나, 아직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로 탄핵 정국을 맞으며 노사가 관망세에 접어들어 성과연봉제 도입이 차기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민간은행 노사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2016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에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보통 임단협은 그해 마무리 되지 못하면 다음 해 초 이뤄지는데 2016년 임단협은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노사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대부분의 은행이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다만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노사만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지난해 말 임금을 전년 대비 2% 인상하는 내용의 임단협을 타결했다.
은행권의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노사의 협상은 벌써 2년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오후 4시에 문을 닫는 은행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발언하면서 금융권의 성과연봉제 도입 필요성이 화두에 올랐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2005년 2.82%에서 2016년 1분기 1.55%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고임금체계는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이에 같은 해 11월 금융 당국이 "금융공기업을 시작으로 금융권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2016년 5월 금융공기업 9곳이 이사회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같은 해 7월엔 은행연합회가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시중은행을 겨냥했다. 가이드라인은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에 따라 연봉을 최대 40%까지 차등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예탁결제원의 노조가 법원에 성과연봉제 무효 소송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금융노조가 총파업을 2차례 실시하는 등 강력한 반발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모두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당국을 비롯한 각 은행은 2017년에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꾸준히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성과연봉제의 세부 내용은 올해 3월까지 각 은행이 내부 논의를 거쳐 정하기로 했다. 이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거쳐 2018년 1월 1일부터 성과연봉제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한 노조의 강경한 입장과 탄핵 정국, 법원의 판결 등으로 실질적인 도입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허권 신임 금융노조위원장이 2월 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전국금융산업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노조기를 흔들고 있다./뉴시스
금융노조는 지난달 14일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새 집행부를 공식 출범했다. 지난 2011년부터 NH농협지부 위원장을 맡아온 허 위원장은 지난해 반(反)성과연봉제를 위한 금융노조 총파업에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노조원의 지지를 얻었다. 허 위원장이 금융노조를 이끌게 되면서 향후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최근 대전지방법원이 철도노조를 비롯한 5개 공공기관 노조의 성과연봉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사례도 성과연봉제 저지에 힘을 보탠다. 대전지방법원은 "취업규칙 변경에 대해선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등 금융공공기관 노조가 제기한 같은 내용의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으나, 이번 소송으로 본안소송에선 노조가 유리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안은 차기 정부로 넘어가거나 혹은 정권이 바뀌면서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 들어 은행 노사는 정권 교체 시기를 맞아 성과연봉제 관련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울러 현재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시중은행 노조 관계자는 "정세가 어지러운데 경영진도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노사 양쪽 다 냉각기 상태"라면서도 "하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성과연봉제 도입은 시도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행권 성과연봉제는 어떻게 성과를 측정해야 할 것인지가 딜레마인데, 사측이 어떤 기준안을 갖고 와도 수용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우선 올해 노사 대화 채널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