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구 전 K스포츠재단 초대 이사장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으로부터 이사장직 제의와 사퇴 종용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재단의 비정상적인 기본·보통재산 비율, 미르재단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도 진술했다.
정 전 이사장은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비선실세' 최순실 씨와 안 전 수석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같이 말했다.
정 전 이사장은 2015년 12월 19일 안 전 수석의 전화를 받고 이사장직 제의를 수락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던 안 전 수석이 전화해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났고, 그가 '여러 분들로부터 덕망 있다고 보고 받았고 윗분한테도 보고를 드렸다'해 그 윗분을 대통령이라 생각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미르재단이 기획한 문화 행사에 K재단을 동원하려 한 정황도 나왔다. 정 전 이사장은 정현식 K재단 사무총장이 미르재단 행사 이야기를 꺼냈다고 진술했다. 이날 증언에 따르면, 정 전 이사장은 정현식 전 K재단 총장으로부터 '중국 단둥에서 축제를 하는데 우리 K도 참가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보고를 전해 듣는다. 이에 정 전 이사장이 보고한 사람이 누군지 묻자, 정 전 총장이 김성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을 데리고 온다.
정 전 이사장은 "문화 예술 행사에 한 두 프로그램으로 스포츠를 한다기에 동의를 안했다"며 "국경 지역이고 조선족이 많아서 체육 하나만으로도 할 수 있는데 무슨 미르재단과 같이 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고 답했다.
정 전 이사장은 재단의 기본재산 비율이 너무 낮은 점도 이상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보통 재단은 기본과 보통 재산을 7대 3으로 하는데, K재단은 반대로 2대 8로 보통재산이 대부분이라 이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설립 초기인 K재단이 갑자기 큰 사업을 벌리는 상황을 막은 뒤 안 전 수석으로부터 사퇴를 종용받은 상황도 증언했다.
정 전 이사장은 검찰이 '이사장에 재직하는 동안 노승일 K재단 부장이 증인에게 5대 거점 스포츠 클럽 지원 사업과 가이드러너 육성 사업 등에 관해 외부 업체에 연구용역을 발주한다고 보고하자, 걸음마도 못 떼는 아이가 뛰는 것으로 보여 더 이상 말로 못 꺼내게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정 전 이사장은 이후 안 전 수석이 전화를 걸어 사퇴하라고 해 불쾌했다는 증언도 했다.
이날 증언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2016년 1월 29일 정 전 이사장을 만나 "너무 잘 알려져 있으시니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하라"고 통보한다.
정 전 이사장은 "매우 불쾌하고 당황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자신을 추천받았다고 했던 안 전 수석이 대뜸 자신이 유명하니 사퇴하라고 강요한 점이 납득되지 않아 대꾸도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다만 정 전 이사장은 검찰이 '안 전 수석이 사퇴하라고 한 것이 연구용역 거절 때문이라고 생각한적 있느냐'고 묻자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