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이례적으로 보수·진보 진영 논리를 떠나 '일·가정 양립'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들을 앞다퉈 정당 법안 발의·대선공약으로 발표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른정당은 당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유승민 의원이 발의한 '육아휴직 3년법'을 1호 법안(4개 법안)에 포함시켰으며,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출산휴가·육아기 근로단축제도 등을 포함한 '생애단계별 육아정책 패키지'를 첫 대선공약으로 내놨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를 정치권이 경쟁하듯 내놓고 있는 것은 저출산·인구절벽 등이 중요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명분만 있는' 정책이 아닌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에서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현재 1년으로 규정된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고용보험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육아휴직 3년법'이라 불리는 이 개정법안은 교사나 공무원 등 공공부문 근로자의 경우 육아휴직을 최장 3년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민간부문까지 적용하고, 현행 만 8세(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자녀에 해당되는 육아휴직 기간을 만 18세(고등학교 3학년)까지 부부가 각각 3년의 육아 휴직 기간을 3회까지 나눠쓰게 하자는 것이다. 또한 육아휴직 급여도 현행 휴직수당 상한선인 100만원을 200만원으로, 통상임금의 40% 수준인 육아휴직 수당을 통상임금의 60% 수준까지 상향조정토록 했다.
유 의원은 "저출산 문제에 실질적으로 대처하자는 취지"라면서 "공공·민간부문 간 차별 없는 동등한 육아휴직 기간을 보장해 초저출산 문제 극복에 우호적인 사회환경을 조성하고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공공부문과 달리 민간부문에서는 그동안 '눈치'를 보며 사실상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부분들을 제도화해 사회분위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23일 영아·유아·아동기 자녀의 보육에 대한 국가지원의 폭을 넓히는 법제개선 방안을 담은 '생애단계별 육아정책 패키지'를 첫 대선 노동공약으로 발표했다. 심 대표가 발표한 공약에 따르면 출산 휴가는 현행 90일에서 120일로, 유급 배우자 휴가도 현행 3일에서 30일로 확대하는 안을 담고 있다. 또한 육아휴직 급여를 20%포인트 인상해 통상임금의 60%로 높이고, 상한액도 현행 100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올린다는 것이 심 대표의 공약 내용이다.
육아휴직 기간은 16개월(현행 4개월)로 늘리고, 이 가운데 3개월은 반드시 쓰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게다가 '육아기 근로단축 제도'를 육아휴직 기간을 포함해 최대 3년까지 분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의 등·하교시간을 맞출 수 있도록 '유연근무제'도 확대할 계획이다. 육아에 있어서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절대 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에 대해서는 '가족친화인증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기적으로 늘리고, 자동육아휴직제도의 법제화와 출산·육아휴직에 따른 불이익행위에 대한 관리감독 및 처벌 강화도 동시에 추진한다고 심 대표는 설명했다.
심 대표는 "육아문제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의 문제"라면서 "혹사받는 노동자를 지켜내는 과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공약 발표 배경을 밝혔다.
정부도 올해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육아휴직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출산육아기 고용안정 지원금(육아휴직 부여 지원금)에 대한 대기업 지원을 폐지하고 중소기업 지원수준을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한다. 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중인 근로자를 대신해 대체인력을 사용하는 사업주에게 지원하는 대체인력지원금도 지원기간에 인수인계기간 2주를 포함하기로 했다.이외에도 대체인력 구인·구직 수요 발굴, 대체직무 맞춤 교육 실시 및 일자리 매칭 등 대체인력에 특화된 채용(취업)지원 서비스 제공을 강화할 예정이다.
나영돈 고용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은 "올해는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전환형 시간 선택제' 등 근로시간 단축 제도 활성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이와함께 아빠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유연하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남성 육아휴직 확산'캠페인을 적극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7616명으로 2015년 대비 56.3% 증가했으며, 이는 전체 육아휴직자 8만9795명 중 8.5%를 차지하는 수치로 2015년 5.6% 보다 2.9%p 증가한 것이다.
기업규모별로 살펴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남성육아휴직자는 전체의 58.8%를 차지하고, 전년 대비 증가율도 64.9%로 높게 나타나 여전히 대기업에서 육아휴직 활용이 용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0인 이상~100인 미만 사업장'의 남성육아휴직자도 전년 대비 56.6%, '10인 미만 기업'은 46.2% 각각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에도 남성육아휴직이 꾸준히 확산되는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 규모별 남성 육아휴직자 수 및 증가율. /자료제공=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