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EU) 단일시장을 떠나는 하드브렉시트(Hard Brexit)를 선택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은 최악을 가정해도 '한국에 97년 말 외환위기나 리먼사태의 충격은 없다'는 것이다. 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극심한 어려움을 경험한 시장참여자들이 대내외 정치·경제적 이슈가 터질때마다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결정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 SK 롯데 등 주요 대기업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표적이되면서 경제활동은 극도로 위축됐다. 한국경제 체력은 바닥까지 뚝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하드브렉시트라는 무거운 짐이 한국경제를 더 짓누를 것으로 우려한다.
◆GDP 0.4~0.5%p 위축 전망
영국의 하드브렉시트는 한국 경제도 큰 짐이다.
1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브렉시트 현실화로 국내 GDP와 기업이익은 각각 0.4%포인트, 3.5%포인트 감소가 예상된다. 이는 브렉시트로 글로벌 명목 GDP가 통화량 위축에 따라 2.5~3.0%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당시 한국투자증권은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선진시장 실질 GDP는 약 0.6%포인트 하락하고, 이에 이머징 GDP도 약 0.5%포인트 가량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신한금융투자도 우리나라의 GDP 성장률이 0.4~0.5%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LG경제연구원의 강선구 연구위원은 "브렉시트 이후 한국과 영국의 무역규모는 중장기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영국의 수요 위축으로 오는 2020년까지 대 영국 수출이 연간 4억∼7억 달러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류승민 연구원은 "브렉시트는 한-EU FTA 효과로 특혜관세를 누리던 우리 수출 제품들의 가격경쟁력을 하락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과 영국의 교역은 135억1700만 달러(2015년 기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대영 무역흑자는 12억6000만 달러다.
문제는 하드브렉시트 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장기적으로도 영국 경제가 안정적일 것이라 예단하기는 이르다. 영국의 메이 총리는 "독립적이고, 자치의 글로벌 영국과 EU의 친구들 및 동맹들과 새롭고 동등한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EU FTA는 예컨대 자동차 수출이나 금융산업의 패스포팅(EU 역내에선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는 권리) 등 단일시장 현 규정들의 요소를 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영국이 이민 제한 정책을 고수하는 한 유럽 단일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까지 얻을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총 교역량과 외국인직접투자(FDI) 감소로 향후 영국경제가 향후 15년간 GDP의 약 8%(1년에 0.5%)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걱정은 영국 경제 침체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영국경제 침체는 세계경제에 악재
과거 위기 때는 한국과 신흥국 등 몇 나라만 안 좋았지 선진국과 세계시장은 괜찮았다. 한국만 달러가 부족했고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위기가 확산된다면 동시에 다 안 좋다.
특히 우리는 무역으로 먹고사는데, 물건을 팔 시장이 비틀거리고 있고, 외국인 마저 발을 뺄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 질 수 있다. 급등락하는 환율도 걱정이다. 환율이 롤러코스터를 탄다면 경영 전략을 수립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유로존에서 영국이 빠지면서 유럽으로의 수출 물량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수출기업들은 아예 전문 환관리 운용사와 내부 별도팀이 외환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과 물류, 여행업종에 진출한 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 하다.
한 국내은행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가치 하락)한다면 외국계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것이 어려워 질 수 있다"라면서 "내부적으로 금융시장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브렉시트(Brexit)'가 한국 경제에 직접 타격을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핵심 경로는 외국 금융회사의 자금 회수다.
유럽계 금융회사의 자금 '엑소더스'가 외인 전체로 확산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EU 은행이 국내 은행과 기업 등 국내 거주자에게 빌려준 돈(익스포져)은 856억2400만 달러였다. 이는 전체 외국은행의 대출 익스포져 2580억5400만 달러의 38%를 차지한다. 2008년 말 만 해도 유럽 차입금은 331억달러로 전체 중 26%에 불과했다. EU 내 은행 중에서는 영국계 은행의 대출 익스포져가 597억 400만 달러로 전체의 25%나 됐다. 대출을 뺀 전체 외국 은행의 국내 거주자 파생상품 익스포져는 184억8700만 달러였다. 보증과 신용공여도 각각 532억300만 달러 205만7600만 달러나 됐다. 익스포저란 통상 특정 국가에서 신용경색이나 위기가 발생할 때 돌려받을 총금액(투자금 대출금 파생상품 등)을 뜻한다.
그러나 걱정이 지나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경제는 브렉시트의 충격을 흡수 할 만큼 탄탄하다는 것.
한국은행의 '2016년 9월 말 국제투자대조표(잠정)'를 보면 9월 말 현재 순대외채권 규모는 3835억 달러로 6월 말보다 257억 달러 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충격이 EU전반으로 확산되면 한국 경제도 브렉시트에 따른 타격을 피해 갈 수 없겠지만, 영국 수출 비중은 1.4%에 불과해 브렉시트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 둔화 우려는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