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에이토랑을 운영하는 '세라' 팀 주방장 이성현 씨의 한 마디에 팀원들은 '예, 셰프'를 외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 씨가 메밀과 감자 등을 넣어 만든 에피타이저 '보릿고개'를 손보고 있다./손진영 기자
"죄송하지만 예약을 하셔야 저녁 코스요리를 드실 수 있습니다." 매니저가 문 앞에서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지난 12일 오후 6시 15분께 찾은 식당에는 손님 셋이 앉아 있었다. 주방 속 요리사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식탁을 바라본다. 쟁반에 접시를 담는 웨이터의 손놀림은 여느 식당의 종업원과 다르지 않다. 출입문 안쪽에는 하얀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 두 명이 손님의 손짓을 기다리고 있다.
'재고 소진. 디너 서비스 준비중.' 다음날 오후 2시께 다시 찾은 서울 양재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센터 지하 1층의 풍경은 전날과 달랐다. 점심 영업을 마친 직원들은 공강을 즐기는 대학생으로 돌아와 있었다.
12월 한 달동안 팝업 스토어 '세라'를 운영할 팀원들. 이날은 학교 기말고사여서 15명 중 절반만 사진을 찍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용철(남부대 2)·이성현(남부대 3)·김예은(남부대 3)·박정륜(남부대 4)·이종복(남부대 2)·김영환(서울현대전문학교 1)·송영준(남부대 3)·이예슬(경희대 2) 씨./손진영 기자
이곳은 aT가 청년들의 외식업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운영하는 '에이토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청년 실업율은 10.7%다. 신규 외식업자의 5년 생존율은 17.7%다. 이렇게 매년 3만6000곳이 문을 닫으면서 사회적 비용 1조2000억원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aT가 40평(132㎡)짜리 팝업 레스토랑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3주씩 무상 임대를 해주고 있다. 에이토랑은 aT와 레스토랑을 합친 이름이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친 학생은 239명 17팀이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에이토랑 수료생 16명이 하얏트호텔과 교내 카페 등에 취업하거나 창업했다.
aT는 최근 대학과 청년, 농가맛집 등으로 참가 대상을 넓혀 2017년 팀을 모집했다. 운영기간도 1달로 늘렸다.
올해 마지막 달을 에이토랑에서 보내는 학생들은 연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만 "팀 이름 '세라'는 우리말로 '새로 시작하다'예요"라고 말했다.
세라 팀은 에이토랑에서 처음으로 저녁 정식을 내놓고 있다. 이 가운데 사진 왼쪽 아래에 있는 메인 요리 조선의 미식가는 손님이 두 입 정도 먹을 때 종업원이 다가가 재료가 소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의미를 설명해준다./손진영 기자
◆소외된 재료를 식탁 위 주인공으로
무뚝뚝해 보이던 주방장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주위 반응이오? 미쳤다고 하죠."
가게를 이끄는 남부대학교 3학년 이성현(23) 씨는 "처음부터 적자를 생각하고 시작했다"고 한다. "무상 임대라는 일종의 방패 안에서 가게를 운영할 기회잖아요."
에이토랑은 그가 3년 동안 연구해온 결과물을 팔아볼 기회이기도 했다. 2014년 8월부터 지난해 4월 레바논 파병을 다녀온 이 씨는 "그때 전환점을 만나 덜 알려진 재료를 연구해왔다"고 말한다.
"똑같은 요리를 벗어나 조금 다른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예쁘고 맛있는 음식 이상으로 문화적인 의미를 넣고 싶었죠." 그렇게 탄생한 대표적인 요리가 저녁 정식 메인 '조선의 미식가'다.
"소 심장으로 만들었어요. 조선시대 때는 이게 미식가들이 찾는 중요 부위였는데, 지금은 강아지 사료에 들어가는 식으로 홀대받잖아요." 젊은 주방장은 음식에 담긴 의미를 설명할 때마다 손등을 위로 한 채 깍지를 끼었다.
이 씨의 '발굴'은 디저트로 이어진다. 시계 상자만한 태극기함을 열면, 해골과 흙더미가 드러난다. "파병 당시 유해 발굴 작업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이걸 먹음으로써 그 의미를 생각했으면 해요." 그는 "디저트임에도 유제품 대신 알로에 거품 등을 넣었다"고 강조했다. 이 씨의 깍지 낀 손등은 가슴까지 올라갔다.
이예슬(사진 오른쪽) 씨는 '최종 목표는 교사인데, 에이토랑은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한 대외활동'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내년 여름 후배들과 다시 이곳을 찾는다. 사업 계획서를 쓰고 식당을 운영한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다. 이성현 씨는 '여기서 나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더 알고 싶다'며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맨땅에 헤딩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손진영 기자
◆부족한 점 채워 '맨땅에 헤딩'하고파
이 주방장을 에이토랑으로 데려온 사람은 요리학원 동기인 경희대 2학년 이예슬(20·여) 씨다. "봄에 학교에서 포스터를 봤어요. 메뉴는 오빠가, 나머지 사업 계획서 등은 주로 제가 맡았죠."
이후 이성현 씨가 요리학원 친구들을 모아 4개 대학교 학생 15명이 가게를 열었다. 이 가운데 주방에서만 10명이 일한다. 나머지 인원은 대면 서비스를 담당한다. 이예슬 씨는 이 가게의 매니저를 맡고 있다.
팀원 간 의견 충돌은 메인도 디저트도 아닌 '담배' 때문에 일어났다. 정식에 대해 설명하던 이 주방장은 "곰방대를 분해해서 비타민 담배를 넣었다"며 "코스에 들어갈 이야깃거리"라고 내세웠다.
이 매니저가 "지금까지 한 분이 입에 댔다"고 하자, 주방장은 멋쩍은듯 뒷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0.1% 합성 니코틴인데 나라에서 허가했으니 문제는 없어요."
이 매니저에게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에요(웃음). 곰방대를 피우지 않는 손님께는 겨울에 마시기 좋은 차를 드리기로 합의 했죠."
최고 매출이 하루 50만원인 이 가게는 시작부터 적자였다. 이 주방장이 레바논 파병 등으로 모은 4000만원을 주방에 썼기 때문이다. 그는 각 음식에 어울리는 음료를 만들기 위한 원심분리기 등 기계 여럿을 주방에 들여놓았다.
이 정도 열정이면 빨리 가게를 갖고 싶지 않을까. 그는 "아직 아닌 것 같아요"라며 머리를 긁는다. 그리고는 양 손을 의자에 짚은 채, 요리로 단련된 상채를 기울이며 눈을 반짝였다. "4000만원, 손해라고 안 봐요. 저 아직 젊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