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본격화로 적자를 낸 농협은행이 부행장 81%를 교체하는 대폭 물갈이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지난 2012년 출범 이래 단행한 임원급 인사 중 가장 큰 규모로, 농협금융 측은 '성과중심 인사원칙'을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인사가 농협은행이 올해 역대 최악의 실적을 낸 데 따른 책임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농협은행은 조선·해운업종의 부실회사 대출이 많아 3분기까지 1조4110억원에 달하는 충당금을 쌓았다. 그 결과 2분기까지 적자에 허덕이다가 지난 10월에야 겨우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다. 신한·국민·하나·우리 등 시중은행들인 수천~수조원 대의 흑자를 올린 것과는 비교된다.
이에 따라 농협 안팎에서는 이경섭 은행장이 1년 만에 물러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하지만 농협금융은 부행장을 대거 교체하는 선에서 은행 적자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에선 경기 민감업종 기업의 대출 시기가 수 년 전이었는 점에서 지나친 인사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농협 안팎에선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과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는데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는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어려운 국내외 경제여건과 불확실한 금융환경 속에서 농협금융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업무분야의 전문성이 높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인재를 중용하겠다는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의 성과중심 인사원칙이 확고히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NH농협금융지주는 지난 9일 지주와 농협은행의 집행간부·부행장보·영업본부장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농협은행의 부행장보를 포함한 11명의 부행장 가운데 81%인 9명이 교체됐다.
부행장 중에는 박규희 여신심사본부장과 김형열 리스크관리본부장 2명을 제외한 김호민 경영기획본부장, 박석모 기업고객본부장, 윤동기 자금운용본부장, 이영수 IT본부장 등 4명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임기가 1년 가량 남아 인사 대상자로 부각되지 않았던 서기봉·박태석·오경석·남승우·신응환 등 부행장 5명은 예상과 달리 전격 교체됐다.
농협금융 측은 "김용환 회장은 향후 예정된 영업점장과 직원인사에서도 전문성과 성과중심 인사기조를 일관되게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