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대기업 출연금 모금을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이 가온머리에 섰고,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전면에 나섰다. '비선실세' 최순실(60)씨가 재단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20일 구속기소된 최씨와 안 전 수석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한류 확산과 문화·스포츠 인재 양성 등을 위한 재단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재단의 재산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회원 기업체들의 출연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명분은 박근혜 정부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인 '문화융성'의 효과적인 추진이었다.
박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20일께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10대 그룹 중심으로 대기업 회장들과 단독 면담을 할 예정이니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그달 24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손경식 CJ그룹 회장·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25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구본무 LG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을 잇따라 독대했다. 박 대통령은 이들에게 문화·체육 재단 설립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각 300억원 규모의 문화·체육 재단을 설립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다. 7∼8월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에게 실무 작업을 맡겼다.
최순실 씨는 당시 박 대통령에게서 "재단 운영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 받았다. 검찰은 최씨가 이를 악용해 재단 이사장 등 주요 인사와 운영을 장악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박 대통령 주도로 설립·모금 작업을 안 전 수석이, 인사·운영 관련 사안은 최씨가 각각 맡은 셈이다.
최씨는 그해 9∼10월께 문화 관련 재단에서 일할 임직원들을 면접으로 뽑고 재단 명칭을 '미르'로 지었다. 최씨는 재단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 임원진 명단과 조직표, 정관도 마련했다.
박 대통령은 10월 21일 안 전 수석에게 "재단 명칭은 용의 순수어로 신비롭고 영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진 '미르'라고 지으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최씨가 지목한 이사장과 사무총장, 이사 등을 그대로 선임하고 사무실은 강남 부근으로 알아보라며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안 전 수석에게 그대로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 전 수석은 10월 22일 청와대 관련 행정관과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과장을 불러 모은아 "재단은 27일까지 설립돼야 한다고"고 못박고 "전경련은 재단 설립 서류를 작성·제출하고 문체부는 당일 현판식에 맞춰 반드시 설립허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23일에는 전경련이 주요 대기업 임원들과의 조찬 회의와 임원 회의를 연달아 개최해 출연금 약정을 압박했다.
24일에는 안 전 수석의 지시로 갑작스럽게 미르 출연금 규모가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늘고 출연 대상 기업도 9개에서 18개로 늘었다.
이 가운데 16개 기업은 청와대와 전경련의 독촉에 사업계획서 등을 제대로 검토해보지도 못하고 출연을 결정했다.
미르재단의 설립 허가와 현판식은 안 전 수석의 지시대로 27일 진행됐다. 출연을 약정한 16개 기업은 11∼12월 차례로 총 486억원을 납부했다.
K스포츠재단도 일사천리로 세워졌다. 청와대가 출연금 288억원 모금과 액수 할당을 주도했다. 설립 과정에서 창립총회 회의록 허위 작성 등의 불법 행위도 있었다.
검찰은 공소장에 "기업들이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의 요구에 불응하면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인허가의 어려움 등 기업 활동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해 출연금을 납부했다"며 기금 출연이 비자발적이었음을 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