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중 입동은 상강과 소설 사이에 들며 올해는 양력 11월 7일로 되어 있는데 지금은 지구 온난화로 겨울날씨의 매서움을 별로 느낄 수 없지만 50년 전 필자가 학교를 다닐 때 만 해도 삼한사온이 뚜렸 했으며 겨울날씨가 매서워 본격적인 겨울에는 영하 15℃∼18℃가 보통이어서 아침에 세수할 때 양은 대야에 손이 쩍쩍 달라 붙었으며 영하 10℃ 가되면 날이 많이 풀렸다는 아침 인사를 했었다. 이제는 입동의 의미는 희미해져만 가고 입동에 행해졌던 미풍양속들이 추억 속에 묻혀 버리지만 그래도 어렸을 그때의 입동이 그립다. 그옛날 입동이 되면 할머니께서는 돼지 띠날 해(亥)일을 택해서 (告祀)를 지냈는데 그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었다. 가마솥 위에 커다란 시루를 얹혀 놓고 멥쌀과 찹쌀을 층층히 구별하여 깔고 그 위에 팥고물을 뿌려서 쪄 냈었다. 집안 곳곳에 마루, 장독대, 부엌, 광, 변소 앞, 대문 앞 등에 떡 그릇을 놓고 집안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고 나면 집집이 떡 그릇을 돌렸던 생각이 난다.
입동(立冬)이 들어오는 해월(亥月)이 되면 지상에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하늘의 신들이 하강하게 되는데 이 때 하늘의 문이 열리니 하늘의 신들이 땅으로 내려오기 위해 열리는 때 고사를 지내는 것이다.
도시의 김장시장에는 교외로부터 무 배추 등이 트럭에 실려 들어오고 동내 빈터 광장에는 군대 방커 처럼 배추와 무 파 마늘 더미로 성을 쌓아 놓고 팔았는데 김장 무, 배추 값이 관심사였다. 배추와 무 값과 양념 값은 서로 반비례하여 쌍곡선을 긋는 실정으로 그해에 양념값이 싸면 배추, 무 값이 비쌌었다. '김장하는 날'에는 마치 잔칫날 처럼 북적 거렸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와서 도와 주었는데 무채나 깍두기로 쓸 무를 써는 사람, 양념을 섞고 버무리는 사람, 절인 배추를 씻는 사람 등등 모두들 저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지만 오랫동안 품앗이를 해온 터라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 양념을 넣어 시뻘겋게 무친 김치와 깍두기를 크고 작은 독에 차곡차곡 넣고 배추 고갱이와 절인 잎에 조기살을 넣어 싼 속대쌈을 속이 쓰리도록 먹다가 목에 걸리기도 했다. 연하고 고소한 배추 속과 양념을 따로 떼어 놓았다가 이웃집에 돌렸다. 김장을 담가 놓으면 한시름 덜었으나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연탄 확보가 문제 였다. 그 당시는 연탄 사재기로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값이 오르고 일반서민들은 연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 날라주는 자원봉사단의 모습과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봉고차에 실어 보내주는 광경이 기사거리인데 김장걱정, 땔감 걱정 으로 살아왔지만 서로 나눔의 정이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