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이 승기를 잡은 듯이 보이지만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는 커다란 대가를 치를 판이다.
9일밤(미국시간) 치러진 미 대선 후보간 2차 TV토론은 전직 대통령(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과 다음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유력 후보(도널드 트럼프), 두 명의 미국 남성 정치지도자의 추잡한 성추문으로 얼룩졌고, 전세계는 생중계를 통해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미국의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토론 직후 CNN은 ORC와의 공동조사를 통해 힐러리(우세평가 57%)가 트럼프(34%)를 눌렀다고 전했지만, 세계인의 최우선 관심사는 '누가 이겼느냐'가 아닌 성추문 공방 그 자체였다.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의 언론 보도가 대표적이다. 관영 영자 매체인 차이나데일리는 힐러리와 트럼프 간 성추문 공방 발언과 함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행 피해 당사자 4명의 등장을 집중 부각시켜 소개했다. 홍콩의 영자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차 토론이 어떻게 더럽혀졌나'라는 제목을 달아 토론 과정을 시간별로 상세히 전했다.
이날 토론에서 힐러리는 초반부터 트럼프의 11년전 음담패설 동영상 파문을 거론하다 트럼프로부터 "힐러리의 남편은 말 뿐인 자신과는 달리 실제 여성들을 성추행 했다"는 반격을 받았다. 트럼프는 힐러리 역시 재판정에서 남편을 돕기 위해 성추행 희생자를 공격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토론이 말로만 더럽혀진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행 피해자 4명을 데려와 토론장 맨 앞줄에 앉히기까지 했다. 이들 중 캐슬린 윌리, 폴라 존스, 후아니타 브로드릭 등 3명은 피해 당시 백악관 직원으로, 아칸소 주정부 직원으로, 양로원 직원으로 각각 일했다. 다른 한 명은 케이티 셸튼으로 강간을 당할 당시 나이가 12살이었다. 성추행 피해 사실을 번복하거나 거금을 받고 합의해 준 다른 3명과 달리 셸튼 사건은 재판까지 갔다. 셸튼 재판 당시 변호사로 개업 중이던 힐러리는 남편의 감형을 이끌어낸 바 있다.
트럼프는 토론 시작 1시간여전 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존스는 "모두가 트럼프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만 놓고 보면 트럼프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착한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