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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현장취재] 금융노조 총파업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합시다"

23일 오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금융노조 총파업이 열리고 있다. 이날 참가자 수는 금융노조 추산 7만5000명이다. 이곳의 수용규모는 6만6704명이다. 총파업이 열리는 내내 관중석의 빈자리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금감원이 추산한 은행권 파업예정인원은 약 1만8000명이다. 이는 은행직원 대비 15% 수준이다. 4대 시중은행의 파업참가율은 3% 내외다.



23일 오전 9시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 KB국민은행 조합원 두 명이 왼쪽 에스컬레이터를 가리키며 "KB는 저쪽 길로 가시면 돼요!"를 외친다. 경기장 앞에는 각 은행별로 피켓을 든 조합원들이 두 명씩 짝지어 동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날 은행원들은 금융노조 추산 7만5000명, 정부 추산 1만 8000명이 월드컵 경기장으로 갔다. 이들은 정부 중심으로 추진되는 성과연봉제 반대와 관치금융 철폐를 주장하기 위해 총파업에 나섰다.

◆노조 관계자 "우리가 진 줄 알았다"

노조 관계자는 끝없이 몰려오는 '동지'들을 보며 안심하고 있었다. 배준호 금융노조 NH농협지부 실장은 "솔직히 우리가 진 줄 알았다"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정부와 회사의 파업 방해를 '너 승진 안 할래?'라는 말로 요약했다. 배 실장은 "지점장들이 직원들을 불러놓고 '너 이번에 승진해야 하지 않으냐'고 압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압력에도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보고 간부들이 놀랐다"며 "기대만큼 오진 않았지만 소기의 성과는 얻었다는 게 간부들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근처 편의점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하나은행원 이모(여·32)씨와 전모(여·27)씨는 줄을 선 지 30분 만에 간식을 살 수 있었다. 이씨는 "지점당 1~2명씩만 와서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실적 때문에 불필요한 상품을 많이 권하고 있다"며 "성과연봉제를 시행하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내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손님에게 안좋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지역 기업은행에서 온 한모(31)씨도 간식 봉지를 가득 안고 나왔다. 한씨는 "2014년 파업 때에 비하면 오늘이 훨씬 많다"며 "어제 우리도 반 감금당했다. 지금 매우 피곤한 상태"라고 말했다. 총파업 전날인 22일 기업은행의 몇몇 영업점에서 일어난 퇴근 방해를 두고 한 말이다. 이날 종로와 서소문 지점 등이 직원들의 퇴근을 막고 파업 불참 각서 제출을 강요한 사실이 알려져 조합원들의 공분을 샀다.

이날 총파업 집회장 근처에서 한 시민이 노조 관계자에게 "열심히 일 하는 사람 월급 올려주겠다는 것 아니냐"며 질문하고 있다.



경기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는 육군사관학교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70대 남성이 노조 관계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공무원 출신인 김모(76)씨는 "성실히 근무한 사람은 월급 올려주고 게으른 사람은 자르는 것 아니냐"며 "공무원 중에서도 요령 피우고 일 안 하는 사람들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조카가 은행에 있는데, 가난한 군인 아버지 아래서 자랐어도 잘 나간다"며 "능력에 따라 대우하는 것은 좋지만, 정부가 제도를 악용하지 않는다고 확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IBK기업은행 지부는 단말기로 사원증을 찍고 있었다. 파업 전날인 22일 기업은행 일부 지부에서는 사원들의 퇴근을 막고 파업 불참 각서를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파업 첫 단계는 '실시간 검색어 1위'

"출석체크 하세요, 출석체크!"

오전 10시. 기업은행 지부는 조합원들의 사원증에 단말기를 대느라 바빴다. 파업 참가 여부와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같은 지부가 마련한 천막 앞에서는 한 관계자가 "인사부에서요? 보내지 마세요. 저희가 조치할게요"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정을 물으니, 한 조합원이 "방금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면서 "인사부에 노조측으로부터 받은 물품을 사진 찍어 보내야 한다던데 어떻게 하느냐"고 문의했다고 한다.

"감시 차원이죠." 정보연 금융노조 기업은행 지부 부장은 "사측이 지방에서 올라오는 고속버스를 막으려 했다"면서 "이들은 회유를 이겨내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 인사부가 사진 찍어 보내라던 물품은 카스테라와 음료수, 휴지 등이 들어있는 간식 상자였다.

이날 은행원들은 총파업 직전에 일종의 '비대면 영업'을 했다. 사회자는 조합원들에게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자"며 "모두 전화기를 들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노조 총파업'을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라고 독려했다. 파업은 이날 오전 11시 다음에서 실시간 이슈 1위에 올랐다. 네이버에서는 8위였다.

신한은행은 지난 2006년 조흥은행과 합병하면서 자체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노조 관계자는 "신한의 경우, 사측이 노조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날 총파업 집회에 드러난 빈 자리는 행사가 끝날때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KB국민은행도 파업 참여율이 저조했다. 노조 관계자는 "2000명 정도 왔다"며 "기대보다는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산한 인원은 1500명이다.



이날 파업 현장에서 유독 눈에 띈 곳은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었다. 이들 은행에 마련된 공간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배종관 신한은행 노조 부위원장은 "엊그제(21일) 회사가 '오늘 파업 참가 여부를 등록하라'는 공문을 올렸다"며 "KEB하나·KB국민·IBK기업·신한 등 4대 은행에서 동시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적인 집단에서 본인 결근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 엄청난 부담"이라며 "신한은 성과연봉제를 이미 하고 있는데다 사측이 노조 입장을 듣겠다고 해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예전에 통합된 조흥은행 출신들은 '파업 이후 합병'이라는 안 좋은 기억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완태 KB국민은행 지부 부위원장은 "전체 6만명을 기대했는데 우리는 2000명 정도 참여했다. 기대보다는 적게 온 편"이라며 아쉬워했다.

오전 11시가 넘자, 조합원들은 박근혜 정부를 향해 5초간 함성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경기장이 떠들썩하게 울리는 동안, 금융노조 관계자가 검지를 허공에 찌르고 있었다. 이제는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는 계단을 내려가며 "주최측 추산 5만 명"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부는 총파업 인원을 2만명으로 추산했다.

◆편의점과 인근 식당은 '대목'

한편, 이날 경기장 앞 편의점은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정오에 들어가보니 8칸짜리 도시락 진열대에는 햄버거 7개와 도시락 1개만 남아있었다. 과자는 주로 2+1 제품이 많이 팔렸다. 커피 역시 8개 칸 가운데 3개 칸이 텅 비었고, 나머지 진열대에도 상품이 몇 개 남지 않았다.

계산대에서 쉴 새 없이 바코드를 찍던 직원은 "평소 경기 있는 날보다 사람이 많다"면서 "몇 배는 더 팔고 있다"며 웃었다. 경기장 내부에 있는 음식점들에도 조합원들로 가득했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는 가수들의 공연이 열렸다. 노라조와 바다가 무대에 올라 슈퍼맨, 매드 등을 불렀다. 금융노조 간부들의 투쟁 격려사가 이어지는 동안, 경기장은 점점 비어갔다. 경기장 한가운데 놓인 수천석의 의자에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경기장의 좌석은 3분의 1도 채워지지 않았다.

금융노조가 '철의 노동자' 노래를 틀기 시작한 오후 4시 10분. 오전과 비슷한 규모로 자리를 지킨 곳은 산업·기업·씨티·SC제일은행 뿐이었다. KB국민은행 자리는 이미 비어있었다. 행사는 이어지는 노래 한 곡과 투쟁에 대한 다짐으로 끝났다. 이날 은행 파업으로 비상 영업을 한 은행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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