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재물을 동의 없이 옮겼어도 형태 변경이나 멸실, 감소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손괴(損壞·망가뜨림)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단순히 위치만 바뀌었다고 물건의 효용과 가치를 본래 용도로 못 쓸 정도로 훼손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는 19일 소유자의 허락 없이 컨테이너를 옮겨 효용을 해친 혐의(재물손괴)로 재판에 넘겨진 A철강회사의 장모(40) 대표와 주모(54) 이사의 상고심에서 각각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컨테이너와 그 안의 물건에 물질적인 형태의 변경이나 멸실, 감손을 초래하지 않은 채 컨테이너를 보관 창고로 옮겼다면 컨테이너의 효용을 침해해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컨테이너의 효용을 해하였다는 이유로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재물손괴죄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봤다.
형법상 재물손괴란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나 은닉 기타 방법으로 효용을 해치는 행위다.
장씨 등은 2014년 A사 소유인 인천시 소재 건물 앞에 설치된 김모씨의 컨테이너를 시흥시 컨테이너 보관창고에 무단으로 옮겼다가 기소됐다. 컨테이너는 시가 120만원이었다. 그 안에는 970만원 상당의 침대와 텐트, 287만원 상당의 폐쇄회로(CC)TV 녹화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1, 2심은 "컨테이너와 그 안의 물건에 물질적인 파괴가 없더라도 컨테이너의 역할을 형해화(가치 없게 만들어 결국 있으나 마나 하게 되는 것)시킨 경우에 해당해 손괴"라며 유죄로 판단했다.
1심은 두 사람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검찰이 컨테이너 가격을 50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낮춘 점을 고려해 벌금 150만원으로 감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