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경기 침체가 오래 이어져 경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회사가 많다는 뜻이다.
5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한 법인은 개인법인을 제외하고 562곳이다. 한 달 평균 80개 기업이 법원을 찾은 셈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540곳이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에 비해 20여 곳 더 많다.
회생조차 어려워 법인 파산을 신청한 기업도 지난달까지 401곳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기업이 1000 곳에 가까울 것이란 전망이다.
회생을 위해 법원을 찾은 기업은 지난 2013년 835곳이었다. 여기서 2014년 873곳으로 늘다가 지난해 925곳까지 솟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울중앙지법에 올해 들어온 기업회생 신청만 249건이다. 전체 사건의 절반 가까이 몰린 셈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에도 기업회생 사건을 390여 건 접수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관리하는 기업은 올해 새로 신청한 기업을 포함해 450곳이다. 이들 기업의 자산 규모는 26조원이 넘는다. STX조선해양과 한진해운 등 자산 규모가 수조원대에 달하는 기업들이 비틀거리면서 연달아 회생 절차를 신청한 영향이다.
자산 규모로 따졌을 때,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재계 순위 19위다. 공기업이나 포스코 등을 제외한 순수 민간 기업들 사이에서는 순위가 더 오른다. 29조원대 자산 규모인 신세계에 이어 12위에 해당된다.
판사 한 명이 다루는 액수도 그만큼 많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 30명 가운데 기업회생 담당은 17명이다. 판사 한 명당 26건, 1조5000억원 규모의 기업 사건을 다루는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별칭은 한때 '재계 서열 5위'였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1999년 관리한 기업회생 신청 기업의 자산 규모가 30조 원대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IMF 사태 이후 경제가 차츰 회복하며 기업들이 회생 절차를 마무리해 2000년대에는 법원이 관리한 자산 규모도 줄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다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됐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중견·중소기업이 많아지면서 법원이 관리하는 자산 규모도 늘어나는 추세로 알려졌다.
법원 관계자는 "최근 3년 동안 법인 회생이나 파산 사건이 매년 20%씩 늘고 있다"며 "경기 불황 측면도 있고 기업회생 절차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과거엔 기업회생 절차가 '법정관리'라는 말로 쓰이면서 회생 신청은 곧바로 '파산'으로 인식됐다. 이에 따라 법원이 기업의 생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인식이 컸다.
하지만 법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법원을 일종의 후견·감독기관으로 받아들여 경영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이 채무 조정을 받고 회생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