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 생전퇴위 선언, 극우개헌 차질 빚나
아키히토 일왕이 8일 대국민 영상메시지를 통해 생전퇴위 의사와 함께 제도화를 요구함에 따라 아베 신조 정권의 극우적 개헌 작업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현행 일본의 왕실법에는 생전퇴위 규정이 없어 법 개정이나 특별법이 필요하다. 여기에 나루히토 왕세자가 딸만 있어 여성의 왕위계승을 막는 규정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상황. 관련법 개정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개헌 작업은 제동이 걸리게 된다. 개헌안이 일왕의 사후퇴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베 정권은 메이지유신 이후 나온 '1889년 헌법'으로의 회귀를 추진 중이다. 이 헌법은 '일왕이 일본을 통치한다'고 규정했다. 메이지유신으로 신성화된 일왕은 이 헌법으로 죽을 때까지 일본을 통치하게 된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미군정은 평화헌법을 통해 일왕을 '상징적 존재'에 그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군국주의 부활에 족쇄를 채웠지만 일왕이 극우세력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원천봉쇄하지는 못했다.
결국 지난 2012년 자민당은 헌법 개정안 초안에서 일왕의 지위를 '상징적 존재'에서 군대를 통솔하는 '일본의 국가원수'로 바꿨다. 이를 통해 1889년 헌법의 내용을 복원하는 동시에 교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참의원선거에서 아베 정권이 개헌선을 확보하면서 메이지유신이 만든 신적 존재로서의 왕이 국가원수로 재등장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러자 평화주의자인 아키히토 일왕은 총선 사흘뒤 생전퇴위 의사를 흘려 아베 정권의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뿌렸다. 이로 인해 아키히토 일왕이 개헌에 대한 육탄 방어에 나섰다는 관측을 불렀다.
실제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해 아베 총리가 종전기념일 기념사에서 우경화를 노골화하자 즉시 이를 뒤집는 기념사를 내놓는 등 일본의 우경화에 제동을 걸어왔다.
1989년 헤이세이 시대를 연 아키히토 일왕은 어린 시절 태평양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까닭에 '정치적 개입 금지'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평화주의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의 뒤를 이을 나루히토 왕세자 역시 부왕과 같은 성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