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 유도 남자 60㎏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손진영 기자 son@
"올림픽 때만 되면 언론에서 역대 메달리스트에 관심을 갖는데 그러지 말고 평소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지금 현역으로 뛰는 선수들에게도 메달 따는 것만 관심을 두지 말고 은퇴 이후까지 지켜봐주면 좋겠고요. 국가대표 선수 중에는 목숨을 걸고 하는 선수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이들이 전쟁터 같은 곳에 나가서 싸우고 돌아오면 정작 해주는 게 별로 없잖아요."
스포츠는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존재하는 세계다. 혹독한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한 자에게는 한없는 빛이 비춘다. 반면 실패한 자에게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빛만 쫓으면서 스포츠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스포츠 선수에게 현역에서 은퇴하는 순간은 삶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만드는 크나큰 단절과도 같다.
국가대표로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한 김재엽은 80년대 한국 유도계를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였다. 계성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1982년 100연승의 대기록을 세우며 유도계를 발칵 뒤집은 그는 1982년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시작으로 국제무대에서 쉼 없는 활약을 펼치며 한국 유도계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유도 남자 60㎏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손진영 기자 son@
그러나 김재엽은 "국가대표가 돼 메달을 따서 국위선양을 해도 돌아오면 국가에서 해주는 게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1988년에 레슬링에서 머리가 깨지면서까지 투혼을 발휘해 금메달을 딴 한명호 선배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선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요. 나라에서는 '메달만 따오라'며 선수들을 전쟁터 같은 곳으로 내보내죠. 그런데 정작 메달을 따고나면 뭐 하나요? 직장 하나 없는데요. 그런 게 안타까워요."
물론 김재엽이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도 처음에는 다른 스포츠 선수들처럼 국가대표와 메달이라는 꿈을 안고 땀과 노력을 기울이던 젊은 선수였다. "원래는 축구를 했어요. 그러다 우연찮게 대구시청 옆에 있는 유도장을 보고 구경을 가게 됐죠. 하얀 도복을 입고 한참 땀을 흘린 뒤 묵상을 하는 모습에 매료됐어요. 그 자체가 남자로서 멋있었거든요."
그렇게 유도계에 발을 담궜지만 처음부터 승승가도를 달리지는 않았다. 좀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방황의 시기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때까지 성적이 잘 안 나왔어요. 그때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유도가 싫었어요. 그러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배가 레슬링에서 한국의 첫 금메달을 따고 장은경 선배가 유도에서 은메달을 따는 걸 봤죠. '가슴에 꼭 태극기를 달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새벽, 오전, 오후, 야간까지 쉬지 않고 운동을 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아쉽게 은메달을 따 1년 동안 좌절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다시 출전해 유도 남자 60㎏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렇게 김재엽은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을 마치고 1989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에는 힘든 삶이 펼쳐졌다. 국가대표 코치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까지 후배들과 함께 했고, 이후 서울 마사회 유도부 감독을 맡아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그는 오랫동안 몸 받쳤던 유도계와 결별했다. 이후 그는 경호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다. 현재는 동서울대학교 경호스포츠학과 교수로 활동 중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유도 남자 60㎏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손진영 기자 son@
지금 김재엽이 바라는 것은 스포츠계가 조금 더 선수들을 위한 환경이 되는 것이다. "스포츠는 국민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죠. 그래서 체육인은 체육인답게 맑은 물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원칙과 바른 말만 하는 것이 바로 '맑은 물'이죠. 하지만 여전히 스포츠계는 그렇지가 못해요. 학연과 지연, 권력과 명예가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곳이니까요." 은퇴 이후에도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그가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사단법인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유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김재엽은 후배 선수들에게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내가 메달을 따지 않으면 태극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메달을 따야 태극기도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전에 선수 자신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는 그 누구보다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바라고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은 중요하지 않아요. 선수들이 갖은 노력을 하며 국가를 위해 싸운 만큼 국민들은 메달과 상관없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격려를 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음 대회를 위해 다시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요."
1988년 서울 올림픽 유도 남자 60㎏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손진영 기자 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