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은 서방세계의 혼돈기였다. 베트남 전쟁은 전후 체제의 모순을 촉발시켜 유럽에서 '68 혁명'을 불렀다. 전쟁 당사자인 미국은 말할 나위 없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이어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될 만큼 사회혼란은 극에 달했다. 당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아시아의 냉전에서 발을 빼겠다며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세상은 변화를 원했고, 그는 세상의 요구에 부응했을 따름이다.
50년 가까이 흘러 4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6년, 미국사회는 끝이 안보이는 폭력과 테러, 차별과 증오에 휩싸여 있다. 미국사회에 내재해 있던 인종차별에 더해 세계화로 인해 몰락한 노동자의 분노가 더해져 과거에 못지 않은 혼란이 일고 있다. 대선 후보 암살은 없지만 미국의 기성 정치권은 그에 버금가는 충격에 휘청이고 있다. 정권교체를 기대하는 공화당의 유력후보들이 정치 이단아에 추풍낙엽으로 떨어져나간 끝에 18일(이하 현지시간) 마침내 사상 유례없이 이질적인 '대선 후보 출정식'이 시작된다.
공화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17일 영국의 가디언은 공화당의 전당대회(대선후보 지명대회)가 열리는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를 1968년의 시카고에 빗댔다.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될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반대자들이 클리블랜드에 집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언론인 클리블랜드닷컴에 따르면 전날부터 트럼프 반대자들이 도심을 누비며 구호를 외치고 교통을 막고 있다. 경찰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이들과의 충돌에 대비하고 있고, 주방위군까지 가세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문제는 군과 경찰이 경계해야 할 이들이 시위대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가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공공장소에서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오하이오주의 법규를 이용해 전당대회 기간 총기를 소지하겠다고 밝힌 상태. 일각에서는 시위대와 트럼프 지지자들 간 총격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축제가 돼야 할 대선후보 출정식이 자칫 유혈사태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발 더 나아가 공화당 전당대회는 당내 주요인사들이 보이콧하며 트럼프 지지자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다. 미 의회전문지인 더힐이 공개한 전당대회 연사 명단에는 멜라니아 트럼프(트럼프의 아내), 티파니 트럼프(트럼프의 딸), 에릭 트럼프(트럼프의 아들), 이반카 트럼프(트럼프의 딸), 린 패튼(에릭 트럼프 재단 부회장) 등 트럼프의 가족과 측근들이 줄을 잇고 있다. 트럼프의 가족잔치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전당대회 관계자는 미국 일간 USA투데이에 "정해진 연사 명단이 있지만 상당수가 연설 직전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어떤 연사가 등장할 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당대회에서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초강경 보호무역주의, 노골적인 반이민정책 등 전통적인 공화당의 이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선에서 승리해 공화당이 정강에 자신의 주장을 수용하도록 만들었다. '닉슨 독트린'이 시대의 산물인 것처럼 그의 주장도 반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미국의 정치에서 변화가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세계정세도 과거와는 달리 흘러가게 될 것이란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