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아이러니'…검열로 박해받던 SNS가 쿠데타 막아
1981년 2월 24일 새벽 1시(현지시간) 스페인 TV에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등장한다. 스페인 육군 최고사령관 복장을 한 그는 "나는 쿠데타를 거부한다"며 스페인 국왕이자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시민과 군인에게 "헌법을 수호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전날 안토니오 테헤로 중령이 이끄는 쿠데타 병력은 의회를 습격, 아돌프 수아레스 총리의 후임으로 칼보 스토텔로를 선출하기 위해 모인 의원들을 인질로 잡는다. 1975년 11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죽음 이후 수아레스의 민주정권이 출범하기는 했지만 40년 가까운 군부독재의 그림자를 채 못 거둔 상태. 군의 일부가 국왕과 의회에 충성하기는 했지만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이들마저도 말을 갈아탈 상황이었다. 이미 발렌시아 지역사령관은 관할지역에 계엄을 선포하며 쿠데타에 호응하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시점에 나온 국왕의 TV연설은 역사를 바꾼다. 24일 정오 의회를 장악했던 쿠데타 병력들은 건물 밖으로 나와 체포당하고, 쿠데타에 호응했던 군 장성들도 연달아 체포되며 2·23쿠데타(약칭 23F)는 막을 내린다.
2016년 7월 15일 새벽 1시께(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CNN투르크에 등장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TV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정권에 정당성이 있다며 터키국민들에게 "거리로 나와 쿠데타군에 맞서달라"고 호소했다. 전날밤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 수도 앙카라의 주요 도로와 방송사를 장악한 쿠데타군은 이 방송 이후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친다. 시민들은 페리스코프(트위터의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앱)와 페이스북을 이용해 이같은 거리의 모습을 터키 전역에 퍼나르기도 했다. 결국 군사쿠데타는 '6시간 천하'로 끝나고 만다. 1960년, 1971년, 1980년 3번의 쿠데타, 1997년 정치개입 등 케말 파샤의 군사혁명 이후 100년 가까이 터키의 실질적인 통치세력이었던 군부세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군이 주요 방송사를 점령한 까닭에 직접적인 TV 출연이 불가능했다. 그는 대신 아이폰의 영상통화앱인 페이스타임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TV에 출연했다. 휴가중이던 그는 새벽 3시께야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앱을 통해 쿠데타를 막는 장면은 이번 사태의 아이콘이 됐다.
미국 듀크대학의 키어른 힐리 교수(사회학)는 17일 복스(Vox)에 "23F 당시 사람들에게 TV란 시트콤이나 쇼를 보여주는 도구로 인식됐다"며 카를로스 국왕이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TV연설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페이스타임을 통해 쿠데타 진압을 시도하고, 시민들이 페리스코프나 페이스북을 통해 쿠데타에 맞선 것은 더욱 놀라운 일로 평가된다. 2003년부터 총리를 시작, 총리4선 금지를 피해 대통령으로 자리를 옮긴 그의 장기독재는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쳐왔다. 시민들의 저항수단은 첨단시대답게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였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전면 차단이라는 강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스 터키 출신의 모델이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풍자글을 소셜미디어에 퍼날랐다는 이유로 기소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에르도안 정권의 검열에 탄압받던 소셜미디어가 그를 쿠데타에서 구한 것이다. 이는 이슬람교를 내세워 집권했음에도 갖은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에르도안 정권이 여전히 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과 함께 '터키의 아이러니'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