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금융위기, 투자자에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남겨
런던 중심가 상업용 부동산들의 모습 사진=런던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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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투자자들이 입은 정신적 상처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공포를 키우고 있다. 브렉시트는 경제적 사건이라기보다 정치적 사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런데도 영국 경제는 경기부양의 중심축이던 상업부동산시장이 얼어붙었고, 이로 인해 펀드런(대규모 펀드 환매사태)이 시작됐다. 동시에 유럽 주요은행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무색할 지경. 곳곳에서 들리는 아우성에서 의문에 대한 실마리가 잡힌다. 현재의 상황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판박이"이라고 두려워하는 목소리들이다.
6일(이하 현지시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 부동산펀드의 절반 이상이 얼어붙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상업부동산 부문은 명백히 자동반사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애널리스트의 말을 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7년 여름 월가 투자은행 서열 5위였던 베어스턴스가 투자자들의 환매를 중단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의 공포를 경험한 투자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영국 부동산펀드에서 발을 빼면서 현재의 혼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전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당시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은 투자자들은 영국 부동산펀드 환매 중단에 전율하고 있다"며 "운명의 날(베어스턴스 환매 중단시점) 이후 9년이 지난 지금 스퀘어마일(런던 금융가)에 베어스턴스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일 스탠다드라이프가 부동산펀드 환매 중단을 발표한 이후 6일 현재까지 환매 중단을 선언한 투자사는 모두 7곳에 달한다. 여기에는 업계 1위인 M&G를 비롯해 10위권내 업체들의 반 이상이 포함됐다. 핸더슨 글로벌, 아비바, 컬럼비아 스레드니들, 캐나다 라이프, 애버딘 등이다. 이들의 환매 중단으로 발이 묶인 자금은 180억 파운드(27조원)에 달한다. 영국 부동산펀드 전체 시장규모(250억 파운드)의 70%가 넘는 액수다.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CNBC는 이같은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면서 "투자사들이 2008년 금융위기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시장감시 활동가의 비판도 함께 전했다. 2007년 베어스턴스를 시작으로 프랑스 국영은행인 BNP파리바 등은 쉬쉬하며 펀드런을 막기에 급급했다.
유럽 은행가도 금융위기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CNN머니는 브렉시트 이후 전체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는 중에도 영국내 은행을 비롯한 유럽 주요은행들의 주가가 폭락한 사실을 언급하며 2008년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당시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향후 전망에 대한 낙관론이 퍼지면서 시장은 안정을 찾았지만 은행들의 위기는 계속됐고 결국 금융위기 사태를 맞았다. 현재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로이드와 바클레이즈의 주가는 각각 30%, RBS는 40% 이상 떨어졌다. 또한 독일의 도이체방크는 25%, 유럽내 부실채권 시한폭탄인 이탈리아 은행들은 생사의 기로에 처했다. 그나마 사정이 좋다는 크레딧스위스와 HSBC 등도 두자릿수 하락세를 보였다. 브렉시트로 인한 은행권의 위기는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퍼져 나갔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제이피모건 체이스, 모건 스탠리 등도 올해 실적 전망이 어두울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