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기조에 역마진, 출연금 부담 등 '어려운 사업'…연계영업 외 얻을 수 있는 이익 '미미'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은행 시(市)금고에도 불황이 찾아왔다. 출연금 부담에다 예금 운영으로 마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 '황금알'이란 별칭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실제로 주요 시금고는 연 1.80%(서울시), 연 2.01%(인천광역시)의 확정 금리를 내줘야 한다. 기준금리가 1.25%로 떨어진 상황이지만 계약상 금리를 낮출 수 없다. 가만히 앉아서 연간 수 백억원의 손해를 보는 구조다. 하지만 일부 지방법원 내 은행의 공탁금 운영 금리는 연 0.2%까지 떨어져 남는 장사로 떠오르고 있다.
시금고나 도금고 등은 최근 입찰 방식이 바뀌면서 은행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금고지기가 된 후에도 문제다. 시금고 특성상 투자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 수익을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재계약이 안 될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남 주긴 아깝고 내가 갖긴 버거운 존재가 돼 버린 셈이다.
시중은행 한 부행장은 "과거 금리가 높을 땐 시금고도 알짜배기 수익사업이었지만 지금은 홍보용으로 전락했다"면서 "시금고만으론 오히려 적자가 날 수 있어 연계영업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 금고지기 되려면 출연금부터 내야…
시금고를 유치하기 위해 은행들은 시에 수 백 억원대의 출연금을 제공하고 있다.
22일 전국은행연합회 이익제공공시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지난 2년여 동안 서울시금고에 출연한 금액은 360억원 가량이다. 이 밖에 협력사업비 등으로는 500억원 가량 출연했다.
우리은행은 100년이나 서울시금고를 단독 관리한 서울시 '공식 금고지기'나 다름없다. 각별한 사이지만 출연금의 규모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지난 2014년 우리은행이 시금고 은행으로 재선정됐을 때 우리은행은 향후 4년간 1200억원의 출연금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마저도 직전 계약(1600억원)보다 깎인 금액이다.
27조원 가량의 서울시 금고에서 할 수 있는 이자마진을 따져보면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4년부터 인천시 1금고 운영기관으로 선정됐다. 복수금고로 운영되는 인천시금고의 경우 일반회계·공기업특별회계·기금을 다루는 제1금고는 7조4400억원, 기타 특별회계를 취급하는 제2금고는 8775억원 가량 담당한다.
당시 신한은행은 향후 출연금으로 470억원, 2금고인 NH농협은행은 85억원을 출연키로 했다. 총 출연금이 전체 금고액의 6% 가량을 차지하는 셈이다.
향토은행인 부산은행은 16년째 부산시금고를 지키고 있다. 단독 관리를 하다가 지난 2013년 1금고로 지정, 2금고는 국민은행이 선정됐다.
부산은행은 향후 4년간 총 233억원, 국민은행은 100억원 등 총 333억원을 협력사업비로 제공키로 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은행들이 시금고에 출연하는 금액은 지난 2011~2013년 총 5000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부터 시금고 계약이 수의에서 경쟁입찰로 바뀌면서 은행들이 제시하는 출연금은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출연금 외 협력사업비도 늘고 있다. 이 사업비는 당초 사회공헌, 문화, 예술, 복지사업 등 공익목적으로 나왔으나, 아직까지 사용처 집행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 경쟁 끝에 얻는 건 단지 명예뿐?
은행들이 출연금을 낮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저금리 시대에 은행별 금리 혜택 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기부금이나 출연금을 많이 내면 금고지기 선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시금고를 유치하면 재정자금 뿐만 아니라 각종 지방세를 예치할 수 있다. 또 시청으로 영업점이 들어가면서 공무원 고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등 연계영업의 효과가 크다. 시가 보유한 법인카드를 자사 명의로 발급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이미지나 공신력 제고에도 큰 몫을 한다.
여러모로 시금고를 포기할 수 없는 은행들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품에 안기엔 버거운 부분도 많다.
지속되는 저금리 기조에 시금고 운영만으로는 마진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연계영업에 역량을 모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전산망 운영 비용과 재계약 실패 시 영업점 철회 등 추가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연계영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라는 뜻이다.
시중은행 한 부행장은 "시금고는 말 그대로 시의 돈을 관리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미지 제고 부분에서 효과가 크다"며 "공공성이 짙은 은행들이 매번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순히 수익 구조로만 따진다면 운영하기 힘든 사업"이라며 "시금고로 돈 버는 시대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