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함).' 시중은행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 여파로 예금과 대출 금리 격차가 갈수록 줄고 있는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 여파로 쌓아야할 충당금은 갈수록 늘고 있다. 부실채권만 31조원을 넘었다. 반면 지방은행들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로 수익원을 다각화하고, 영토(영업장)를 전국구로 확대하고 있다. 내친김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곳도 있다.
◆기업구조조정 초저금리에 울고 싶은 시중銀
"마른 수건을 짜는 것도 한계다. 울고 싶은 심정이다. 금리는 내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익의 85~90%를 어떻게 설명할지 답답하다"(B은행 여신담당 부행장)
시중 은행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기업들이 쓰러지면서 부실을 떠안아야 할 처지에 놓여서다.
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현황(잠정치)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은행권 부실채권 규모는 31조3000억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조6000억원 늘었다.
떼일 수도 있는 돈이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수익성은 크게 나빠질 전망이다. 해운·조선 등 기업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면서 은행권의 '충당금 공포'도 현실화하고 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6사에 대한 6대 시중은행의 익스포져만 15조 2565억원 가량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상 초유의 저금리로 주 수입원인 이자마진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역(逆)마진' 공포까지 살아나는 분위기다.
1분기 국내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1.55%로 전년 동기(1.63%) 대비 0.08%포인트 하락해 역대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한국은행이 6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투자 한정태 연구원은 "금리 하락이 지속한다면 순이자마진(NIM)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면서 "은행 이익의 85% 이상을 이자이익이 충당하는 상황에서 추가 NIM 하락은 이익 감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비이자이익 비중이나 해외 수익 비중이 매우 낮아 천수답처럼 NIM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금리가 지속 하락한다면 수익성 악화는 불을 보듯 빤하다"면서 "일본의 90년 중반보다 좋은 환경이 결코 아니다"고 걱정했다.
자금 조달 환경도 썩 좋지 않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우리은행의 신용등급을 기존 'A1'에서 'A2'로 한 단계 낮추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국내은행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은행들은 웃돈을 주고 돈을 빌려야만 한다.
하영구 은행연합회 회장은 은행권의 수익성 개선 방안으로 비이자 수익 다변화와 해외진출을 꼽았다.
뱅커들은 더 치열한 경쟁에 내 몰리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
하 회장은 "은행산업의 수익성과 임금 구조를 볼 때 임금 구조 및 고용 체계의 유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은행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의 호봉제는 임금의 유연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과 경쟁하는 지방은행
"지방은행이란 말을 아직도 쓰나요? 요즘은 시중은행이랑 비슷하던데…"
지방은행이 갈수록 기세가 등등하다. 인수합병(M&A)을 통해 금융지주로 덩치를 키운 지방은행들은 영토 확장과 서비스 제고 등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최근엔 조선·해운발(發) 쓰나미도 비껴가며 리스크관리에도 주목받고 있다.
2일 은행권에 따르면 3대 지방금융지주(BNK·DGB·JB)의 전체 종 자산은 200조원으로,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 자회사로 있는 BNK금융지주의 101조9855억원이다. 이어 DGB·JB지주가 각각 58조6660억원, 39조8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방은행들의 덩치불리기는 수도권 진출로 인한 영업권 확장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방은행은 당초 영업기반을 지역에 둔 은행으로 출범했으나, 최근엔 서울을 비롯해 인천·경기 등 수도권으로 영토를 넓히며 '지방'은행이라는 명칭이 무색해졌을 정도다.
수도권 진출이 가장 활발한 곳은 JB금융지주의 광주·전북은행이다. 광주은행은 지난 2014년 말 수도권 점포가 4개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총 25개에 달한다. 전북은행도 수도권에 20개의 점포가 있다.
올해 전북은행의 수도권 수신은 4조2000억 원으로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도권·대전지역 대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3% 늘었다.
광주은행의 수도권 수신은 전년 대비 1조8000억 원 증가한 4조5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대출은 3조37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2% 큰 폭 성장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해외진출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부산은행은 2012년 중국에 부산은행 칭다오지점을 낸 데 이어 최근에 베트남 호치민지점에 예비인가를 취득했다. 지방은행 최초로 인도 뭄바이에 대표사무소도 열었다. 전북은행은 오는 6월 캄보디아 프롬펜상업은행 인수를 앞두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 2012년과 2014년에 각각 중국 상하이지점과 베트남 호치민사무소를 열었다.
조선·해운업 부실 대출로 은행권에 먹구름이 몰려온 가운데, 지방은행의 리스크 관리도 돋보인다.
지난 3월 말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은 조선업종에 2조2180억원, 해운업종 6042억원의 여신을 보유 중이다. 이는 전체여신 대비 각각 3.4%, 0.9%로, 여신금액 중 상당 부분이 담보와 기적립 충당금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BNK금융지주 박영봉 부사장은 "지방은행의 특성상 지역 내 정보에 밝은 만큼 사전에 부실징후를 포착하고 거래처 현황 파악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며 "특히 지난해 초부터는 자산건전성 관리 종합대책반을 운영해 부실징후기업과 한계기업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시행해왔다"고 말했다.
/채신화기자 csh9101@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