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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교훈…협상도 빚잔치도 아닌 '살생부'가 망한 공룡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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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살아남을 브랜드와 공장들은 무엇인가. 버려야 하는 브랜드와 공장이 무엇인가. 반전을 위한 전략적인 마무리는 무엇인가.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대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이끈 질문들이다. 채권단과의 지리한 협상은 없었다. 빚잔치는 나중 문제였다. GM을 되살린 것은 살릴 공장과 버려야할 공장을 담은 살생부였다.

구조조정 전문가로 GM의 회생방안을 입안한 제이 알릭스는 지난 2013년 11월 포브스에 GM 구조조정과 관련된 비사(秘史)를 공개한 바 있다. 오마바 행정부의 '자동차 구조조정팀'이 투입되기 몇 달 전 자신이 릭 왜고너 당시 GM 최고경영자(CEO)에게 '파산법 11장 제 363조'를 활용한 구조조정안을 제시했고, 오바마 구조조정팀은 몇 달 동안 치밀하게 다듬어진 이 방안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알릭스에 따르면 당시 파산 직전이던 GM은 자체적으로 두 가지 구조조정 방안을 두고 고심 중이었다. 하나는 정부의 재정지원에 기대 파산을 완전히 피해보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채권단과 협력해 파산절차를 되도록 간소화하자는 방안이다.

첫째안은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승리하면서 물 건너간 상황. 부시 행정부에 이어 공화당이 재집권할 경우 재정지원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했던 왜고너는 파산을 피할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정치적 해법은 실패였다.

채권단이 중심인 남은 방안은 금융위기를 맞아 무너져 내린 다른 기업들은 물론이고 이전 파산기업들이 애용하던 일반적인 파산절차였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의 상징이 돼 온 GM으로서는 선택하고 싶지 않은 해법이었다. 채권단과의 협상을 거치는 동안 혼란을 피할 수 없고, 결국 GM의 브랜드 가치가 추락하며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GM의 몰락이다.

알릭스는 미국 자동차 역사를 써온 GM이 구조조정으로 인해 몰락해서는 안된다고 생각, 이전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구조조정안을 만들었다. GM을 뉴코(새법인)와 올드코(구법인)로 나누어 뉴코에 알짜배기 브랜드와 사업체들을 몰아주고, 나머지를 올드코에 넘겨 청산절차를 밟자는 방안이다. 한 마디로 GM을 굿 컴퍼니(좋은 사업체)와 배드 컴퍼니(나쁜 사업체)로 나눠 확실히 살릴 수 있는 것만 살리자는 것이다.

그는 파산법 11장 제 363조를 활용하면 채권단의 개입 없이 신속하게 올드코를 청산하고 뉴코를 출범시킬 수 있다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왜고너를 설득했다. 무엇보다 당장 생존에 급급하기보다는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몇 달 동안 알릭스는 GM 법무팀과 함께 뉴코로 넘길 브랜드와 사업체, 올드코에 남겨야만 할 브랜드와 사업체에 대한 살생부를 만들었다. 기준은 뉴코의 기업가치를 늘리고, 올드코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청산금액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2009년 봄 오마바 행정부 출범 직후 월가의 파산 전문가인 스티브 래트너를 비롯한 정부 자동차 구조조정팀은 정부가 지원하는 500억 달러를 투입해 이 구조조정안을 실행에 옮겼다. 속도전이었다. 석달이라는 시간 동안 샤브, 허머, 새턴, 폰티악 등 4개 브랜드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쉐보레, 캐딜락, GMC, 뷰익, GM대우, 홀덴 등 6개 브랜드였다. 이 과정에서 폐쇄된 공장이 14개. 판매점은 40%가 사라지고, 2만여명이 해고됐다. 스바루, 스즈키 등 제휴관계에 있던 회사 보유 지분은 도요타나 폴크스바겐 등 경쟁자들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1970년대 일본 자동차의 공습 이래 적극적 대처가 아닌 방만경영으로 수십년간 곪아온 환부를 도려낸 대가치고는 약소한 수준이었다. 알릭스는 몇 달 동안의 세심한 살생부 작성 작업 덕분이라고 했다.

이후 GM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2년만인 2011년 900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지진 피해로 주춤한 도요타를 밀어내고 세계 1위 자동차업체로 우뚝 선 것이다. GM의 구조조정은 120만명에 달하는 실업사태를 막고 350억 달러의 세수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가 구조조정의 교과서로 삼게 된 이유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GM으로부터 민간 전문가 주도의 구조조정, 신속하고 과감한 구조조정, 전략적인 구조조정 등의 교훈을 배워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조선·해운을 시작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된 최근 들어 더욱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한국의 현실상 GM식 구조조정에 대한 반론도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스스로 채권단이 돼 협상을 이끄는 구조조정에 문제가 많다지만 실제 이들만큼의 경험과 역량을 가진 민간 전문가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에 급급한, 전략부재의 구조조정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유효한 상황. 현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 도는 가운데 글로벌 해운업계의 합병 바람에 맞설 필요가 있다는 찬성론과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이를 넘어서는 구조조정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파산법 11장 제 363조'는 법원이 채권단의 동의 없이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의 우량자산을 떼내 매각을 명령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GM 구조조정 이전까지 실패한 공장이나 불필요한 시설을 정리하는 데 활용됐다. GM 사례 이후 신속한 구조조정 방안으로 각광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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