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3개월, 계좌 10개 중 7개가 '깡통계좌'…여전한 실적 압박, 금감원 CCTV 자료 보존 요구
#.노인복지관에서 일하는 A씨(여·25)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시중은행 직원이 A씨의 직장으로 찾아와 "실적을 올려야 하는데 ISA 좀 가입해 달라"며 가입신청서와 함께 사은품을 내민 것. 해당 은행은 회사 주거래 은행이었기 때문에 A씨는 상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결국 A씨를 비롯한 동료들은 계획에 없던 ISA에 가입했다.
이른바 '국민통장'이라 불리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가 출시된 지 3개월이 지났다. ISA는 당초 국민재산증식 목적으로 등장했으나, 실적을 올리기 위한 유치전으로 번지면서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아울러 ISA 계좌 가운데 1만원 이하의 계좌가 70%를 차지하면서 빈 수레가 요란한 모양새다.
◆겉으로 보기엔 '승승장구'인데…
5월 31일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ISA출시 11주 만에 가입금액이 누적 1조8033억원을 돌파했다. 가입자 수는 지난주 8만4417명이 새로 가입해 총 209만816명에 달한다.
업권별로는 은행 가입자 수가 187만2229명(89.5%)으로 압도적이었다. 유형별로는 신탁형 가입자 수가 193만6040명으로 일임형(15만4776명)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가입금액도 신탁형이 1조6583억원으로 일임형(1450억원)에 비해 많았으나, 일임형은 10주차(187억원)에 이어 이번 주 259억원이 새로 유입되는 등 가입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방은행까지 일임형 ISA 대열에 합류하면서 ISA 계좌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BNK금융그룹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은 최근 지방은행 중 처음으로 일임형 ISA판매를 시작했다. 광주은행도 1일부터 '쏠쏠한 ISA 일임형'을 출시하고 현장판매를 비롯해 비대면채널 판매에도 돌입한다.
◆"기자님, 혹시 ISA 가입하셨어요?"
매주 ISA 실적이 늘고 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ISA 출시일인 3월 14일부터 한 달 간 은행권과 증권사에서 개설된 ISA 계좌는 150만5657개 중 106만5732개(70.78%)가 가입금액 1만원 이하인 이른바 '무늬만 ISA계좌'였다.
금감원은 가입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불완전판매가 대규모로 진행된 것으로 판단, CCTV 자료 보존 등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실제 개선으로 이어질 지 의문이다. 은행 직원에 대한 강한 실적 압박 탓이다.
ISA 출시 3개월이 지났으나 은행 직원들은 여전히 가입자 유치에 한창이다. 창구를 방문하는 고객은 물론 가족·친지 동원부터 타행 직원끼리 맞교환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영업 직무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한 영업점의 부지점장은 "원래 은행원들의 경쟁은 어디서나 치열하다"며 "오죽하면 남북통일도 은행원에게 맡기면 이뤄질 거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직원별 평가 항목 안에 ISA가 포함돼 있다"며 "은행에서도 불완전판매를 우려해 평가 비율을 높게 잡진 않았지만, 어쨌든 실적에 들어가기 때문에 직원들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