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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건국대 70주년 그때 그시절] '농활? 우리가 원조에요'…1973년 빛 바랜 사진 속 대학생들

1973년 경기도 여주 농촌마을에서 농활을 벌였던 건국대 학생들. 사진=건국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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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우리나라 대학 중에는 탄생과정에서 농촌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건국대학교다. 건국대 설립자인 상허(常虛) 유석창(劉錫昶) 박사는 농촌의 발전이 없이는 한국의 발전이란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건국대 건학정신에 담겨 건국대로 하여금 농촌 발전에 앞장서게 했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화돼 농업 이외에 산업이랄 게 없었던 50년대 중반 건국대 학생들은 이미 조직적으로 농촌활동(농활)에 나서 매년 여름 바쁜 농촌의 일손이 됐다. 유 박사의 농촌 근대화 사상은 유신 직전 시작된 새마을운동의 불씨가 됐다.

10일 건국대 박물관이 창학 85주년·개교 70주년을 맞아 발굴해 공개한 1973년 건국대 농활 사진 6장에는 경기도 여주 농촌마을이 새마을운동 바람을 타고 변화해 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빛 바랜 칼라사진 속 농촌마을은 아직 흙벽 위에 초가지붕이 덮인 낡은 집이 서 있지만 마을 도로와 하수시설은 시멘트로 튼튼히 보수되고 있다. 교련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땡볕 아래서 삽집을 하고, 여학생들도 쇠칼퀴를 들고 땅을 고르고 있다. 당시 여학생들은 못하는 게 없었다. 사진 속에는 치마를 입고 축사 소독을 하는 여학생이 보이고, 갓난아이를 능숙하게 달래주는 여학생도 나온다. 까까머리의 아이들, 단발머리 여중고생들, 붉게 탄 피부에도 입성은 도시 아줌마 못지 않은 아낙네들의 모습에는 근대화 바람을 탄 농촌의 실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60년대 경제개발 기간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인 대학생들의 패션은 80년대 후배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세련되고 자유롭다. 아직 유신의 찬바람이 스며들지 않은 모습이다.

유신 이후 정치사회적 엄혹기가 닥치자 대학생들의 농활은 70년대 중반부터 변해간다. '농촌봉사활동'의 의미였던 농활은 '농민학생연대활동'의 의미로 바뀌고, 80년대 일대 부흥기를 맞는다. 그러나 농활의 의미가 어찌 바뀌든 활동규모가 늘든 줄든 대학생들이 농촌에서 땀을 흘리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었다는 점, 대학이 농촌의 변화와 함께 하고, 변화를 이끌려고 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건국대가 발굴해 낸 옛 사진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날 건국대 박물관이 공개한 6장의 사진들은 특별기획전시 사진들의 일부다. 건국대 박물관은 5월 11일부터 9월 30일까지 건국대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창학 85주년·개교 70주년 특별기획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행사는 '건국의 과거와 미래, 그 찬란한 빛', '상허선생, 지리탐구의 씨앗을 뿌리다', '건국, 민족사학의 뿌리를 내리다', '건국 세계로 도약하다' 등 총 4개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전시물은 그래픽패널, 유품전시, 과거 입학식 팜플렛·학생증·교재 등 다양한 소재를 망라하고 있다.

건국대 박물관은 또한 유석창 박사의 일생을 연보와 유물을 통해 소개하는 '설립자 상허 유석창 박사의 일대기'와 신문 만평에 나타난 학교생활을 스크랩해 관련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만평으로 보는 그때 그 시절'과 같이 9가지 다양한 소주제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구성해 관람객에게 건국대를 넘어 한국대학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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