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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2일 한-이란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기업의 이란 진출 토대가 마련됐다. 한국은 당장의 시장 확보만이 아니라 이란과 보다 장기적인 협력관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란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필수다. 이란이 신흥경제국으로 도약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저유가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이다.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 등의 유리한 조건은 이란의 인프라 재건에 도움이 되지만 자칫 이란 경제의 족쇄가 될 수 있다. 이란이 신흥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원유에 대한 의존은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아직 남은 미국의 금융제재만이 이란이 극복해야할 유일한 과제가 아니다.
국제 비즈니스 전문가인 댄 스타인복은 이란에 원유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를 토대로 지속적인 성장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1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메르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은 비원유 경제를 토대로 삼아야 하며 산업 전반에 걸친 경쟁력 제고와 생산성 향상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유와 천연가스에 대해 "이란의 산업구조 다각화와 경제 현대화를 가속화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들어오는 외국 자본을 과거처럼 원유, 천연가스, 광물, 석탄, 자동차 산업 등 중공업 분야에 쏟아붓지 말고, 소비와 금융 분야에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올해 550억 달러를 이 분야에 투자해 2003년 수준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5개국) 성장모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를 넘어선 막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란은 경제제재 기간 연구개발 투자 부진 등으로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추락했다. 현재 이란의 연구개발 투자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0.12%에 불과하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수준이다. 스타인복은 이란이 신흥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적어도 인도와 터키 수준인 0.7~1.0%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이란은 원유에 의존하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GDP의 70%를 원유에 의존하는 사우디와 달리 현재 이란의 원유 의존도는 GDP의 10% 가량에 불과하다. 또한 우수한 인적 자원과 변화를 갈망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긍정적인 요소다. 이란에는 인구의 9.4%에 해당하는 750만명 가량의 대학졸업자가 있다. 교육강국인 이스라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특히 이란의 고등교육은 공학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다. 이란 대학들은 해마다 23만여명의 이공계 졸업자를 배출한다. 이밖에 이란계 미국 기업인들이 경제봉쇄 중에도 이란과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 외부의 예상보다 이란의 변화가 급진적이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포브스는 이란의 이같은 장점을 거론하며 "방해물이 없다면 이란에서 수천개의 스타트업과 소기업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잠재력만이 아니다. 실제 이란은 지난 3월 19일 끝난 지난해 회계연도에서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초로 비원유 분야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 424억 달러, 수입 415억 달러로 근소한 흑자였지만 하산 루하니 대통령은 "진보의 성취"라고 평가했다. 산업 다각화의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담당장관은 "(경제제재 해제를 담은) 핵합의 도출, 비즈니스 환경 개선, 유럽연합과의 신뢰 형성 등이 흑자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면에 숨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동 전문 뉴스 Al모니터는 이란내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비원유 분야 무역수지 흑자는 긴축재정과 이란경제 위축에 따른 수입 감소의 결과"라며 "국내 산업에 필요한 기계류 등의 수입이 늘지 않는다면 밀수로 이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현재 이란의 밀수 규모는 150억~250억 달러에 이른다. AI모니터는 "밀수 문제 뒤에는 이란의 왜곡된 환율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