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재정지원, 정부·여야·한은 모두 의견 엇갈려…전문가 "양적완화, 중앙은행 고유 업무 아냐"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시중에 돈을 공급하는 통화정책이다. 취지로 봤을 땐 반론이 없을 것 같지만 여기에 '한국형'이 붙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현재 당국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양적완화는 국책은행의 돈을 메워주자는 논리다. 부실기업에 대규모 대출을 제공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손실을 대비할 수 있게 재원을 확충해 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여야·한은의 의견이 모두 엇갈린 상태다. 이 가운데 두 기관의 수장인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가 나란히 해외출장을 떠나면서 현지 회동을 통해 담판을 지을 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여야 엇갈린 의견…·한은 '신중론' 무너질까
2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유일호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는 오는 3~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릴 '제49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두 수장의 공식적인 회동 일정이 잡히진 않았지만 구조조정 재원 조달을 놓고 비공식적 만남을 통해 방안을 도출해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이다.
정부가 직접 시중에 현금을 풀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거나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이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데다 국가재정에도 부담이 된다.
이에 정부는 한은이 산은의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하거나 자본금을 투자하는 자본확충 방식과 산업금융채권(산은채)를 매입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 역시 정부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구두논평에서 "구조조정을 하려면 자본이 필요한데 국책은행 지원 여력이 부족한 만큼 선별적인 양적완화를 해야 한다"며 "야당도 적극 협력해 달라"고 말했다.
반면 더민주·국민의당은 "국민 부담만 가중시키는 미봉책"이라며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논쟁의 중심에 선 한은은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신중론에서 정부의 기업구조조정 지원 방안에 동참하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업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은이)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1일 "구조조정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재정과 통화정책의 조합을 고려하고 있다"며 정부와 한은이 부담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쪽으로 방안을 찾아 나설 것을 시사해 회동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양적완화, 한국은행의 역할인가?
해운·조선 등 한계 업종의 구조조정이 시급한데 정부와 한은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은 일반적으로 유럽과 일본 등 디플레이션 위기에 놓인 국가에서 실시하는 방식인데, 이를 국책은행에만 한정해서 실시한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발권력 동원은 한은의 고유 권한이지만 국민의 세금 부담이 뒤따르는 점과 돈이 풀리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게 될 우려 등으로 철저한 원칙 하에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에서 구조조정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 중앙은행 고유의 업무는 아니다"라며 "원칙대로라면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구조조정이 시급한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여기까지(한국형 양적완화)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하려면 재정자금을 마련하고 채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구조조정은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손쉬운 방법으로 중앙은행에게 발권력 동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은의 고유 업무가 아닌 만큼 (양적완화가) 바람직한 선택인지 의아하다"며 "결국 안이하고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