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소원'(감독 남대중)의 안재홍(30)을 보면서 할리우드 코미디 배우 세스 로건이 떠올랐다. 영화 속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갑덕(안재홍)은 '사고친 후에'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등에서 세스 로건이 보여준 코믹 캐릭터와 판박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안재홍에게 세스 로건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가 찍은 B급 정서의 코미디를 좋아한다"며 웃었다.
20일 개봉한 '위대한 소원'은 '아메리칸 파이' 같은 할리우드 코미디를 한국적인 분위기로 잘 녹여낸 작품이다. 고등학생인 남준(김동영)과 갑덕이 루게릭병에 걸린 친구 고환(류덕환)을 위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다는 내용을 그렸다. 고환의 소원은 바로 죽기 전 단 한 번이라도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 그래서 어른으로 세상을 마감하는 것이다. 다소 자극적인 소재지만 영화는 이를 코믹하면서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안재홍이 연기한 갑덕은 세 친구 중 가장 특이한 인물이다. 시종일관 까부는, 영화에서 웃음을 담당하는 비중이 가장 큰 캐릭터다. 엉뚱한 캐릭터에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안재홍을 사로잡았다.
"혼자 밤에 글을 보면서 웃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정말 웃으면서 볼 정도로 재미있고 신선했어요. 특히 갑덕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과 마음으로 행동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더라고요. 그게 매력적이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욕심도 났고요."
영화는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슬픔이 깔려 있다. 남준과 갑덕이 보여주는 좌충우돌 소동도 결국에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를 위함이기 때문이다.
배우로서는 웃음과 슬픔 사이에서 감정의 톤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을 법하다. 안재홍도 "독특한 인물이라서 감정의 톤을 어디까지 잡아야 할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 해답은 남대중 감독의 생각 속에 있었다. "갑덕이 분명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캐릭터가 쌓이는 인물이 있다면 갑덕은 그와는 반대로 시작부터 어떤 캐릭터인지를 알 수 있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의상이나 헤어스타일도 사전에 다 정했고요. 촬영 전에 만든 갑덕의 캐릭터를 쭉 밀고 나아갔죠."
성적인 소재를 다룬다는 점도 고민 중 하나였다. 안재홍이 집중한 것은 "고등학생이 자신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 앞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엉뚱한 이야기가 공감가게 다가오는 것은 고환을 연기한 류덕환의 연기 덕분이기도 하다. 안재홍도 "고환이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덕환이가 진정성 있게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줬다"며 그를 칭찬했다.
좌충우돌 소동은 이들의 성장으로 마무리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 안재홍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솔직했다. "잘 몰라서 뭐라고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어요. 아무래도 지어내서 하는 말이 될 것 같아요(웃음)." 독립영화 '족구왕'에 이어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배우로서 인지도도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안재홍은 "아직 나는 어리다고 생각한다"며 "배우로서도 이제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고등학교 시절 안재홍은 또래들처럼 대학생이 되고 싶었을 뿐 큰 꿈은 없었다. 다만 영화가 좋아서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으로 선택했고, 연기를 배우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한 재미를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친한 친구 4명과 함께 찍은 단편 '검은 돼지'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연기뿐만 아니라 감독까지 겸하는 모습이 세스 로건과 또 닮았다. 그의 차기작은 이선균과 함께 다음달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이다. "비범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그의 귀띔이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족구왕'을 찍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묵묵히 즐기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의 눈치를 보거나 혹은 다른 외부적인 여건 때문에 그렇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걸 즐겨야겠다 싶어요.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자는 마음도 생겼고요. 그런데 사실 저도 말만 이렇게 하는 거지 잘 몰라요(웃음). 잘 모른다는 말, 이 말을 꼭 붙여주세요(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