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홍 창업주는…
1920년 전북 정읍 출생
1940년 이리 농림학교 졸업
1942년 고창군청 공무원
1945년 피혁공장 설립
1947년 대림상공 창업
1956년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 설립
1962년 동아화정 미원으로 사명 변경
1965년 미원그룹 사장
1968~1987년 미원그룹 회장
1971년 미원문화재단 설립
1987년 미원그룹 명예회장
1997년~대상그룹 창업회장
'공무원→무역업→조미료 제조업→종합식품기업.'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가 걸어온 길이다.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접고 사업에 뛰어든 그는 무역업을 하며 일본에서 독립된 이후에도 일본 조미료에 의존하는 국내의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30대 청년 사업가는 그 길로 일본으로 건너가 1년동안 조미료 제조공정을 배웠다. 1955년 일이다. 돌아온 후 그가 설립한 기업이 대상그룹의 전신인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다. 미원의 신화가 시작된 시점이 바로 이 때부터다.
'미원'은 1세대 국산조미료로 수입에 의존하던 조미료의 국산화를 견인한 브랜드다. 미원의 인기로 대상그룹은 한때 미원으로 상호까지 변경하기도 했다. 지금도 60~70대는 '대상'보다 '미원'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할 정도다.
미원은 론칭 10여년만에 조미료의 불모지인 한국을 조미료 강국으로 끌어올렸다. 1950년대만해도 수입 조미료가 판을 쳤지만 임 창업주가 미원을 내놓은 지 10여년만인 1970년대에는 조미료 수출국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당시 미원은 인도네시아, 일본, 홍콩 등 한국을 넘어 해외 수출까지 본격화했다.
삼성과의 조미료전쟁에서 승리한 일화도 유명하다. 미원에 맞서 삼성(현 CJ제일제당)측에서는 '미풍'을 내놨지만 한번도 미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승승장구하던 삼성에게 실패의 고배를 전한 것아 바로 임 창업주인 셈이다. 조미료 전문기업에서 출발했지만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인수합병과 신규 사업 진출을 통해 대상그룹은 종합식품기업으로 변모했다. 장류 시장에서 2인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냉동식품과 육가공품을 비롯해 계열사를 통해 두부, 김치, 건강기능식품에 이르기까지 식품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7년 11월 미원은 상호를 대상으로 변경했다. 현재 대상그룹은 청정원, 순창고추장, 홍초, 종가집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임 창업주는 그룹회장직을 장남인 임창욱 현 명예회장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미원을 개발한 그가 만든 대표적인 히트상품 중 하나가 대상웰라이프의 대표 건강기능식품인 '클로렐라'다. 클로렐라는 임 창업주가 직접 개발한 후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직접 챙겨 먹었던 제품으로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진 그는 화려함보다 소박함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기보다 묵묵히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재계의 모임에도 거의 참석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인근에서 그를 보좌한 임직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출장시 모텔과 여관에서 숙박하는 검소한 회장님으로 기억한다. 검소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은 고인의 마지막 길까지 이어졌다. 대상그룹은 임 창업주의 유지를 받들어 외부 조문을 받지 않고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