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부품 공급 중단에 ZTE 생사기로…반도체는 중국 아킬레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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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미국 정부가 중국 제2의 통신장비업체이자 스마트폰 제조사인 ZTE에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반도체 자립을 추진 중인 중국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국 상무부는 ZTE가 이란 등 미국의 경제제재 대상국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 IBM, 오라클, 델 등 미국산 첨단 장비를 수출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까지 세웠다는 ZTE 내무문건을 확보하고, 미국 부품공급업체들에게 ZTE에 수출하려면 사전허가를 받도록 조치했다. 조치는 8일(현지시간)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허가 불허를 전제로 한 조치이므로 사실상 부품 수출금지나 마찬가지다.
이같은 조치로 당장 ZTE는 한창 성과를 내고 있던 미국시장 진출이 막히게 됐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에 따르면 ZTE의 중저가폰은 미국내 시장점유율이 8%로 애플, 삼성, LG에 이어 4위다. 중국내에서 샤오미와 화웨이에 밀리자 미국시장 진출에 공을 들여왔던 ZTE로서는 큰 타격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산 부품에 의존했던 제품 생산 전반에 위기가 닥쳤다는 것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이루지 못한 탓에 ZTE는 그동안 퀄컴을 비롯한 미국산 반도체에 의존해 왔다. 미국산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 파장은 단지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생존 자체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014년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부문이 ZTE 전체 매출의 86%를 차지했다"며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현재 ZTE는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회사주식 거래를 중단한 상태다.
ZTE가 미국산 반도체를 다른 국가 제품으로 바꾸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애널리스트인 신시아 멘은 WSJ에 "미국산이 아닌 반도체에도 미국산 부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IT기업들에게 ZTE의 위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은 아직 반도체 수입국가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미국 정부가 내린 결정은 (중국)IT 기업에 내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였다. 이번 사례는 국가 간 정치적 문제로도 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이 각종 첨단 IT제품을 쏟아내고 있지만 모래 위에 쌓은 성이나 다름 없다. 중국도 이를 잘 알고 있어 지난해부터 반도체 자립을 위해 국가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미국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시도가 미국 정부의 제동으로 번번히 무산됐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조치가 알려진 직후인 8일 "미국 조치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