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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 전담배우에서 백악관 막후 실력자로…낸시 레이건의 94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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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미국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6일(현지시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울혈성 심부전이다.

레이건 여사는 1921년 뉴욕에서 자동차 딜러인 아버지와 여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도 어머니처럼 40년대에 배우로 데뷔했다. 주로 현모양처 역할을 맡았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레이건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1949년 이뤄졌다. 공산주의 공포가 지배하던 시절이다. 그녀는 공산주의 동조자 리스트에 동명이인이 포함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당시 배우조합위원장이던 레이건 전 대통령과 만났다. 3년만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영부인 시절(1981~1989년) 레이건 여사는 '막후의 실력자'로 통했다. 그녀의 입김에 의해 백악관 비서실장이 해고될 정도였다. 그녀는 점성술에 심취해 백악관 인사에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남편을 내조하는 동시에 대외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녀가 벌인 마약퇴치캠페인은 상당히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논란도 많았다. 교도통신은 "경기 불황 속에도 불구하고 백악관 실내 장식에 거액의 돈을 들여서 값비싼 식기들을 사들여서 물의를 빚어 '퀸 낸시'로 불리었다"고 전했다.

백악관을 나온 뒤에도 주목받는 활약이 많았다. 70세의 나이에 모두 꺼리던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고,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하자 알츠하이머 퇴치 연구소를 세웠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늘리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국과는 1983년 방한 때 귀국하면서 심장병 어린이 2명을 데려가 치료한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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