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학] ④학자금 빚쟁이-실업자의 나라…학자금 부채 미국 위협, 한국도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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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의 여성인 K씨는 졸업도 하기 전에 학자금 상환이 걱정이다. 대학을 한 번 옮긴 만큼 다른 학생들보다 빌린 학자금이 더 많아서다. 그는 다니던 대학을 졸업해서는 취업이 어려워 중간에 그만뒀다. 그리고는 더 나은 대학과 더 나은 학과를 찾아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첫 학교보다는 낫지만 좁은 취업문을 뚫기에는 현재 다니는 학교도 여전히 부족하다는게 요즘 그의 고민이다. 그는 졸업하자마자 빚만 잔뜩 진 실업자가 될까 두렵기만 하다.
#15명의 코린시안 칼리지 졸업생들은 지난해 학자금 부채 탕감 운동을 벌였다. 대학의 거짓 선전에 속아 막대한 등록금을 내고도, 부실한 대학교육을 받고 취업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내 대표적인 영리대학이었던 코린시안 칼리지는 지난해 파산해 미국과 캐나다에 산재한 100여개의 캠퍼스가 모두 폐쇄됐다. 코린시안 칼리지 졸업생의 부채 탕감 운동은 미국 대선과 맞물리면서 미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등록금 총액 14조원,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 잔액 10조원, 세계에서 대학진학률이 첫 손에 꼽히는 우리나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청년실업난이 심화되는 만큼 학자금 부채 문제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말 청년실업률은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학자금 부채 문제는 대학의 위기와 직결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양질의 교육을 못하는 대학은 실업난과 학자금 부채 문제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는 이미 이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도 갈림길에서 멈칫하다가는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다.
◆1조3000억 달러 학자금 대출에 미국 신용위기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말 미국의 학자금 부채 규모는 1조3000억 달러가 넘는다. 신용카드, 자동차 구입 대출, 주택담보대출 규모보다 크다. 부채 상환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연체율이 11%를 넘는다. 미국내에서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상의 위기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9%를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자금 부채는 채무자 수에서도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인 중 4000만명 이상이 학자금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졸업 후 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해 수입이 생기면 우선 학자금 부채를 갚는 데 급급하다. 이사를 하거나 결혼을 하려고 하면 발목을 잡는 게 바로 학자금 부채다.
지난 2009년 이후 미국 학자금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취업이 힘들어지자 대학 진학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문이다. 이들은 취업을 위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취직은커녕 졸업 후 빚더미에 앉았을 뿐이다. 대학 교육이 취업을 보장해 주지 못한 탓이다.
코린시안 칼리지 사태는 2009년 이후 미국 학자금 부채 문제의 단면을 드러낸 사건이다. 미국내 가장 큰 교육기관 중 하나였던 이 대학은 거짓 취업률로 학생들을 속이면서 한편으로는 거액의 등록금을 챙겼다. 미 연방교육부가 사실을 파악해 3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을 때는 이미 때늦은 상황이었다. 연방 학자금 대출로도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에 학생들은 민간대출까지 받아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 후 취업은커녕 막대한 빚만 남았을 뿐이다. 입학한 학생의 60% 가까이는 3년내 파산하기도 했다.
코린시안 칼리지 사태는 잠자던 '학자금 부채 탕감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켰다. 지난해 하반기 동안 7000명이 학자금 부채 탕감을 신청했다. 이중 70%가 코린시안 졸업생이지만 나머지 30%는 다른 대학 졸업자들이다.
◆사상 최고 청년실업률에 학자금 연체율 다시 증가
우리나라도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학자금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2014년 대출금 감면 등 정부의 채무조정으로 연체율 4.4%를 기록하며 잠시 숨을 돌렸던 학자금 상환 문제는 지난해 4.74%로 다시 상승했다. 졸업후 3년 내 한 푼도 상환하지 않은 장기미상환자 수도 2013년 1201명에서 2014년 1만2563명으로 급증했다. 졸업자의 실업이 장기화되면서 정부의 채무조정 조치도 한계에 이른 것이다.
지난해말 한국장학재단 대출 잔액은 9조9191억 원으로 2010년(3조6800억원)의 3배에 달한다. 여기에 현재 대학 등록금 총액은 14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7조원을 투입했지만 총액에서만 반값등록금일 뿐 체감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혜택에서 소외된 학생이 상당수라면 졸업후 빚쟁이가 되는 학생의 수는 늘 수밖에 없다.
보다 큰 문제는 취업률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대학교육의 양과 질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을 추진 중이지만 2022년까지 16만명의 대학정원 감축에서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