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향 남자 54년 2월 17일 양력 자정
Q:저의 남편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려고 각오가 대단합니다. 공천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가 의문부터 가는데 제가 선생님을 찾아뵙는 것조차 모릅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제가 더 초조하여 우선 지면을 통하여 상담을 올립니다. 어느 지역 인지는 말씀 드릴 수는 없고 나라에 애국하는 일이 선량이 되어 국민들을 대변하여 일하겠다는 신념뿐입니다. 세간에서는 국회위원을 못마땅하게 생각 하고 있어서 어느 면에서는 나서는 것이 떳떳치 못한 감이 있어서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만 남편의 뜻을 꺾을 수가 없으며 이번에도 온 식구와 친척 친지들의 수고를 빌려야 하는데 과연 출마를 해도 되겠는지요?
A:어려운 시기에 매우 첨예한 문제라서 판단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로드맵(Road map)인 사주팔자의 아름다운 다른 얘기를 적어보겠습니다. 조선 5백년 역사 속에서 역학이 어떻게 써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6백 년 전 태조 이성계시대에 국사인 무학 대사가 정도전대감과 더불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 한양도읍을 정하려고 했을 때 주역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음양오행에 따랐습니다. 무학 대사가 경복궁을 지으려고 하는데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선 몽을 내렸습니다. 이 미련한 사람아 서울은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형국이니 날개를 내려놓고 지어야 무너지지 않지 사대문을 먼저 지어야 하느니라. 신선의 말에 따라 무학 대사는 사대문의 위치를 정했습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북한산이 있고 동쪽에는 낙산, 낙산은 옛날 서울대학자리(이화동)로 서쪽에는 인왕산이 있고 바위투성이 산이며 남쪽에는 남산이 있고 뒤로 관악산이 있지요. 경복궁에서 보았을 때 이산들이 동서남북에 위치하고 있는데 먼저 동대문을 지었습니다. 동대문에는 일어날 흥(興)자에다 어질 인(仁)자를 써서 흥인이라 했는데 동쪽산인 낙산 첫머리부분이 약해서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낙산의 첫머리 부분은 장남에 해당하는 자리인데 여기가 허약하므로 동남쪽에 위치해있는 일본의 침략이 많을 것이며 왕의 장남이 수명이 짧아 계승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강하는 일종의 부적의 형태로 산과 같은 갈지(之)자를 넣어서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고 이름을 지었지요. 다른 문과 달리 동대문에 갈지(之)자가 붙어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고 부적을 써가며 동대문 이름을 짓긴 했는데, 지면상 오늘은 여기서 마치니 다시 상담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김상회역학연구원 02) 533-8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