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압력에 밀려 증시 부양 나서는 일본연금…장수국가 사회보장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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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일본공적연금이 아베 신조 정권의 압력에 밀려 일본 증시 부양에 나설 전망이다. 전날 일본 정부의 부양책을 기대하며 7% 이상 폭등을 부를 정도로 매수에 나섰던 투자자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세계 최고 장수국가의 국민들은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에게는 반면교사가 될 일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6일 프랑스의 크레디아그리콜(Credit Agricole SA)과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인용해 일본공적연금이 당초 계획보다 대규모의 국채를 처분해 그 자금을 일본 증시에 투자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증시에 투입될 자금 규모는 6조2000억엔(약 6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일본 증시에 공적연금 70조 투입 전망
이같은 방침이 나온 배경에 대해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일본증권의 오사키 슈이치 투자전략가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금리를 채택해 (그 여파로 일본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 사태를 맞고, 주가는 떨어지는 환경이라) 일본 공적연금은 보유 채권을 줄이고 증시 부양에 나설 것 같다"고 말했다.
크레디아그리콜의 카즈히코 오가타 이코노미스트도 "일본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일본공적연금은 보유 채권 비중을 낮추고 더 공격적으로 일본 주식과 해외 주식 구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오사키에 따르면, 일본 공적연금은 2월 현재 자산의 42%를 국내 채권에, 19%를 일본 증시에, 14%를 해외 채권에, 20%를 해외 증시에 투자하고 있다. 공적연금은 당초 채권에 투자하는 자산의 규모를 35% 수준으로 축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마이너스금리 도입으로 상황이 변하면서 10% 더 축소해 25% 수준까지 낮출 것이라는 소식이다. 동시에 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자산의 규모를 현재보다 6% 많은 25%까지 늘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적연금 전체 자산의 6% 가까운 66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 일본 증시에 투입될 전망이다. 컨설팅업체인 타워즈 왓슨에 따르면, 일본 공적연금의 자산은 약 1400조원 규모로 다른 나라의 연금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자산 규모 2위인 노르웨이 공적연금은 자산이 8800억 달러(약 1000조원), 3위인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4300억 달러(약 523조원) 정도다.
◆아베노믹스 위기에 공적연금 위험 떠안아
일본공적연금의 이같은 행보는 아베 신조 정권의 작품이다. 공적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는 기능으로 인해 공격적인 투자를 피하는 게 상례지만, 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 경기부양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분위기가 일변했다. 전통적인 채권투자로는 수익률이 너무 낮아 연금 고갈 사태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채권 투자 비율을 대폭 높였다. 지난해 9월말 기준 해외 투자를 포함해 주식과 채권 투자 비율은 각각 50%였다.
이후 일본 국채 수익률이 기대되자 국채 투자 비율이 늘었지만 공적연금이 이번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경우 주식 투자 비율이 전체 채권 투자 규모를 넘어서게 된다. 이도 역시 아베 정권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아베 정권은 일본은행을 내세워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금리를 채택했지만 역효과를 보았을 뿐이다.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초강세를 기록했고, 일본 주식시장은 폭락을 이어가다 전날 반등 심리로 폭등,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4분기 일본 경제 성장률이 3분기 회복세가 무색하게 마이너스 성장으로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일본의 친정부 성향 보수언론도 아베 정권 비판에 나서고 있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경기부양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처지다. 결국 공적연금이 아베 정권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셈이다.
◆공적연금 손실 위험 커…정치적 악용 사례될 수도
하지만, 공적연금은 아베 정권의 기대에 부응하기보다는 일본인들의 노후를 위협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공적연금은 그동안 아베 정권의 압력으로 인해 국내 증시 투자를 늘리다가 실패의 쓴맛을 이미 본 상태다.
공적연금은 주식 투자에 나섰다가 지난해 7~9월 -5.6%라는 사상 최대의 손실을 기록했다. 당시 7조8899억엔의 적자 중 국내 증시에서의 손실만 4조3154억엔에 달했다. 해외 주식에서도 엔고와 주가 하락으로 인해 3조6552억엔의 손실을 입었다.
공적연금마저 무리한 투자로 손실을 입을 경우, 아베 정권에 대한 평가는 최악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일본은행의 마이너스금리 단행에 대해 "소심하고 성급하게 이행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의 성장 둔화, 유가 하락 등으로 인해 글로벌 증시가 불안에 떠는 상황에서 타이밍을 잘못 선택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불안요소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공적연금의 경기부양 노력이 실패하고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다면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공적연금이 위기를 맞는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