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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중국 증시가 15일 춘절(중국 설) 연휴를 마치고 10일만에 재개장하는 가운데 월가 헤지펀드 세력과 중국 금융당국 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재개장을 앞두고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수장은 수개월 간의 침묵을 깨고, 월가 세력의 위안화 공격을 막아내겠다며 전의를 다졌다. 그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위안화 약세에 베팅하는 월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할 경우, 새해 초 증시 폭락 사태가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증시 휴장 기간 중국내 급격한 자본유출과 외환 보유고 감소 소식이 잇따랐고, 한발 앞서 재개장한 홍콩 증시는 폭락이 이어지면서 패닉에 빠졌다. 모든 사태는 위안화 약세 문제와 직결된다. 위안화 보유 자산을 처분해 손실을 피하려는 시장의 움직임이 증시 불안의 근원이다. 중국 증시 불안은 미국 증시를 포함한 글로벌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이는 실물경제까지 위협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재닛 옐런 의장까지 위안화 약세가 글로벌 경제의 위협이 되고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중국 인민은행-월가 헤지펀드 간 전운
14일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월가와 위안화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입을 다물고 있던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이 드디어 공개발언에 나섰다. 저우 행장은 중국 경제전문지인 차이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외환보유고 급감에 따른 시장의 우려를 일축하며, 위안화 방어 의지를 확고히 나타냈다.
그는 위안화 약세에 대해 월가 헤지펀드의 공격 때문이라며 위완화 가치가 절하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중국은 투기세력이 시장을 장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외환보유고 문제에 대해서도 "펀더멘털(기초 경제 여건)이 문제가 없는 한 외환보유고는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게 정상"이라며 '외환보유고가 줄어 위안화 방어가 어려워진 중국 당국이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자본통제에 들어간다'는 소문을 부인했다. 그는 "자본유출(capital outflow)과 자본도피(capital flight)는 다른 개념"이라며 최근 수개월 간의 자본유출은 정상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외환보유고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월가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 투기세력이 공격할 때마다 인민은행이 즉각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탄(보유 외환)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비용을 최소화하면 투기세력에 대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우 행장은 중국 증시 재개장에 앞서 글로벌 투자가들에게 위안화 환율에 대한 인민은행의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시장에서는 위안화 약세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월가 위안화 붕괴론에 미 연준까지 가세
하지만 저우 행장의 발언이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월가에서는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위안화에 대한 비관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헤이먼캐피털매니지먼트의 카일 배스는 며칠전 공개된 투자서한에서 중국 은행권이 붕괴되면서 중국에서 일찌기 세계경제사에 없었던 거대규모의 경제재편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은행들이 막대한 부실채권으로 인해 전체 자산의 10%에 해당하는 손실을 입을 것이며, 인민은행의 손실도 3조5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인민은행은 은행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10조 달러어치가 넘는 위안화를 새로 찍어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규모로 위안화 통화규모가 늘어나게 되면 위안화 가치는 30%까지 폭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전까지 월가 헤지펀드 사이에서는 실물경제와 위안화 통화 규모 간 격차로 인해 15~20% 정도의 위안화 가치 절하를 예상하고 있었다. 배스의 주장은 위안화 위기가 단지 통화규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월가에서 시작된 위안화 위기설은 현재 미 연준까지 번져 미국 경제에 자신만만하던 옐런 의장의 태도도 변했다. 옐런 의장은 지난 10일(미국 시간)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최근 위안화 가치의 절하가 중국 환율정책의 불확실성을 더 강화시켰다. 이런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미국 수출 수요와 해외 경기가 약해지고 금융시장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융 불안이 계속되면 경제활동과 고용시장에 대한 전망을 짓누를 수 있다. 따라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고 했다.
옐런 의장의 발언으로 증시가 요동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위안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홍콩 증시 패닉, 중국 증시 폭락 전조?
지난 11일 춘제 휴장을 마치고 재개장한 홍콩 증시 폭락 사태는 위안화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개장 이후 이틀 동안 항셍지수는 휴장 직전인 지난 5일에 비해 5% 이상 급락하며 2012년 6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기업들로 이루어진 항셍중국기업지수는 이틀간 7% 가량이 급락했다. 2009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로 인해 중국 증시 재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 증시와 같은 폭락 사태를 우려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부양 노력이 예상되지만, 시장에서 변화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는 중국 증시 재개장을 앞두고 중국 부자들이 편법을 이용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마켓리서치그룹의 솬 라인은 INYT에 "회사도 위안화를 원하지 않고 개인도 마찬가지다. 위안화는 오랜 기간 확실한 방책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콩 자산 매니저인 로널드 완도 "내가 접촉한 몇몇 회사들은 모두 자산을 해외로 옮길 의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증시가 폭락할 경우 아시아 증시에 미칠 영향은 심각할 전망이다. 지난 한주 동안 아시아 증시가 매우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경기부양책으로 내놓은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되레 경제전망에 대한 비관론을 부추기면서 중국 증시 휴장 기간에 아시아 증시 전체가 요동쳤다. 한국 증시는 개성공단 폐쇄가 겹치면서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