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하 수협법 개정안)이 5개월째 국회에 계류되면서 어민과 수산업종사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바젤Ⅲ 적용 유예 기한인 12월 1일까지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수협은행의 재무건전성이 급락해 어촌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4월 총선을 앞두고 현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법안이 자동 파기될 수 있어 사안 처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수협법개정안은 수협의 사업구조개편과 경제사업 활성화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8월 김우남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과 9월 정부가 발의한 법안이다. 정부와 국회 모두 수협법 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으나, 세월호와 예산안 등의 논의 과정에서 여야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개정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이하 한수총)는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어 '수협법 개정 조속 처리' 촉구문을 채택하고 김인권 회장과 이사진을 시작으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잠자는 수협법개정안
수협법개정안은 지난 2013년 국제결제은행이 제정한 은행 자본건전성 관련 국제기준(바젤Ⅲ)이 도입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국내은행은 지난 2013년 12월부터 바젤Ⅲ 기준을 적용받고 있는데, 수협은행은 협동조합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준비기간을 고려해 오는 12월 1일까지 적용을 3년 유예 받은 상태다.
수협은행이 바젤Ⅲ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수협중앙회로부터 독립한 후 자본금을 늘려야 한다. 이에 따라 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BIS비율)은 6%, 보통주 자본비율은 4.5%로 높여야 하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다.
이를 위해 수협은행은 예금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공적자금 1조1581억원을 출자전환하고 부족한 자본 9000억원 가운데 5500억원은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예정이다. 나머지 3500억원은 임직원 및 조합 출자를 통해 자체 마련할 계획이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바젤Ⅲ가 적용되면 2001년 예금보험공단으로부터 투입한 1조1581억원이 전액 부채로 분류돼 수협은행의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다.
하지만 여야가 세월호와 올해 예산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파행을 거듭하면서 수협법 개정안이 상임위(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수협은 지난해 11월 수협법 개정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여야 대표와 국회에 전달했다.
현재로서 가장 큰 문제는 2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다. 19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국회까지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개정안은 자동 파기된다. 이럴 경우 20대 국회에 개정안을 다시 입안해야 되므로, 바젤Ⅲ 적용 유예 기간 내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수협은행 관계자는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20대 국회로 넘어간다면 12월까지 개정안이 통과되기 힘들 것"이라며 "4월 총선을 거쳐 개원하면 국회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제반 절차 등 입법 진행에 시간이 걸리므로 이번 회기 내 꼭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 국가경제균형발전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계층인 어민들을 신경써서 돌보는게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의 개정안 통과를 위해 138만명 회원의 한수총이 서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가급적 2월에 마무리해서 제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2일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에서 열린 한국수산업총연합회(한수총) 이사회에서 김임권(오른쪽 두 번째) 한수총 회장을 비롯한 회원단체장들이 처음으로 서명부에 싸인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바젤Ⅲ 미달시 수협은행 영업 위축
수협법개정안 연기로 당장의 피해는 없지만, 바젤Ⅲ 유예 기간이 종료되는 올해 말을 넘어서면 다양한 직·간접적 피해가 발생한다.
우선 바젤Ⅲ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수협은행은 자본잠식상태가 돼 건전성 지표에 문제가 생긴다. 은행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지만 회계·감독 기준상 부채자본 기준이 바뀌기 때문이다. 은행의 건전성 급락은 영업 위축으로 직결되는데, 이는 어민과 수산업계 종사자의 피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수협 관계자는 "수협은 은행에서 창출되는 이익으로 어업인 지원, 지도, 교육사업, 수산업 발전 등 어촌 경제의 중심축이 되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당장 16만명의 조합원이 수협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원창출기능이 막혀버리면 연쇄적으로 파급효과가 생겨 어촌 경제와 수산업의 침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한 "어민의 생산물 위탁 판매를 비롯해 수산자금을 저렴하게 융통하고 유사시 대비 보험 사업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며 "이런 사업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좀 더 저렴하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어민들의 취약한 부분을 보충해 줄 수 있는데 수협이 흔들리면 어민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수협의 사업목적은 크게 지도, 경제, 신용 사업으로 나뉜다. 지도사업은 어업인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사업을 통칭하는 개념이며, 경제사업은 어민의 생산활동과 판매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신용사업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을 창출해 지도 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에 쓰인다.
이러한 구조에 따라 은행으로 얻은 수익은 어민 지원을 위해서 사용하는 재원이기도 한데, 은행이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해 수익 창출에 제약이 발생하면 정부의 정책 사업을 대행하는데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수협의 입장이다.
수협은 또한 상대적으로 교육·의료적 부분에서 낙후돼 있는 어민을 위해 어업인 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재단은 건강검진 사업이나 정보화 교육 등의 사업을 비롯해 어민 자녀를 위한 장학사업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수협 관계자는 "어업인 복지재단은 기금을 적립해서 운영하는 방식이므로 기금 확충에 문제가 생기면 사업이 정체되고 나아가 위축될 수도 있다"며 "재단을 통해 연 1400억원 정도로 조합 어업인의 지원 예산을 측정해 놓고 있는데 재정적인 여력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