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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국제유가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30달러선이 한때 붕괴됐다. 저유가로 인해 미국, 일본,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서방선진국(G7)은 거센 디플레이션 압력을 받게 됐다. 세계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온 중국은 6년만에 처음으로 수출이 감소했다. 중국이라는 디플레이션 탈출구가 닫히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올해 디플레이션 압력이 가장 클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12일(미국시간) 미국내 유가의 기준이 되는 서부텍사스중(中)질유(WTI)의 가격이 장중 배럴당 30달러선이 무너졌다. 2003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WTI는 이날 배럴당 30.44달러로 마감하긴 했지만 시장에 남긴 충격은 컸다. 30달러가 심리적 마지노선이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1개월전 에드 모스(시티그룹의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가 유가 20달러를 전망했을 때 전세계가 무시했다. 유가가 30달러 아래로 떨어지자 (다들) 그의 말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스는 "유가 30달러 이하로는 원유시장이 그다지 오래 버틸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다"라고 말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전세계적으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미국 채권왕의 말을 전했다. 더블라인캐피털의 창립자인 제프리 군드라흐는 1년여전 유가 하락이 시작됐을 때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무엇인가가 대단히 잘못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며 "심하게 말하자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말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새해를 전망하면서 "G7 모두 물가가 2% 아래로 떨어진 경우는 1932년이래 2015년이 처음이다. 새해에도 주요 선진국에서 물가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하락의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는 이유였다.
텔레그래프의 전망과는 달리 배럴당 30달러선이 무너지면서 전세계는 유가가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상태다. JP모건은 "유가가 바닥을 쳤는지 확신이 없다. 배럴당 1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지만 그 가격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탠다드차타드도 "원유시장을 균형점으로 되돌릴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없는 상황"이라며 배럴당 10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WTI는 1999년 마지막으로 배럴당 10달러를 기록한 바 있다. 국제유가의 기준인 북해 브렌트유는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10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나 WTI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원유들은 이미 10달러대로 주저앉은 상태다. 현재 유가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디플레이션 문제는 심각해질 공산이 크다.
유가는 기초 원자재다. 유가가 떨어지면 연료와 에너지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어 제조업 생산비용과 운송 등의 다른 비용까지 함께 내려간다. 이 과정이 확대되면 물가에 하방압력이 작용한다. 소비자 물가가 하락하면 기업의 이윤이 줄고 근로자들의 임금도 내려간다. 가계의 구매력이 떨어지게 되므로 소비가 줄어든다. 이는 다시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악순환의 고리다.
시티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G7 국가 중 캐나다와 일본만이 물가상승률이 0.5%를 넘었다. 최근 중국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은 지난해 수출입 규모가 전년보다 8%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이후 6년만에 처음이다. 주요 선진국들과 성장동력인 중국 경제가 모두 디플레이션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국내 물가상승률은 담뱃값 인상 효과를 빼면 사실상 '제로'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