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정은미기자] 희망의 2016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경제가 장기침체의 늪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여러 지표에서 나오고 있다. 15~29세 청년실업률이 8%대를 웃돌고, 실질실업률이 두 자리 수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실업난'을 겪고 있는 것. 세계경기 둔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 경제의 경착률 가능성 등으로 인해 올해 경제는 더 안 좋아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내수부진과 수출 경기 둔화가 뚜렷한 한국 경제로서는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저성장국면에 빠질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동시장과 공공부문 구조개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정부가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추진했던 노동개혁 5개 법안은 지난해 야당 반대에 부딪혀 결국 해를 넘겼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의 환경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본과 노동을 대립적 개념으로만 생각해 노동개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우리보다 잘살았지만 지금은 경제가 파탄난 중남미와 같이 추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노동시장 효율성 순위는 '83위'
3일 주요 경제지표 등을 분석해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세계 하위권 수준이다. 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WEF)의 '2015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효율성 순위는 83위, 노사간 협력은 132위를 기록했다. 정리해고 비용은 높고(117위), 고용 및 해고관행은 굳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115위).
실제로 중소기업은 경직된 노동시장의 구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1분기 중소기업 종사자 수는 전년 동기대비 1만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제조업과 건설업체의 종사자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약 4만5000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력이 부족해도 해고가 불가능한 정규직 채용에 부담을 느끼는 등 인력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 5대 법안(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기간제근로자 보호법, 파견근로자 보호법)은 노동시장 유연화, 청년 일자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이에 대해 "노동개혁 5대 법안이 통과되면 청년일자리가 늘고 비정규직 규모가 줄어들며, 양극화도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보면, 산재보험법은 근로자 출퇴근 시에도 산재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고용보험법은 실직자의 실업급여를 50%에서 60%로 강화하고,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당 노동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게 골자다. 그만큼 실직자의 생활이 안정되고,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파견법은 55세 이상 고령자, 용접 등 6개 뿌리산업으로 파견근로를 확대하는 것을 담고 있다. 당정은 중장년층의 파견 허용으로 일자리가 1만3000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중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두고 여야가 가장 큰 이견을 보이고 있다. 기간제법은 기간제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아르헨티나 몰락의 중심 '포퓰리즘'
야당은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기간제법에 대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때인 10여 년 전 비정규직법 도입을 위한 협상 때와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고용노동부와 당정협의를 통해 기간제 사용기간을 3년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노동계의 입장은 지금이나 현재나 달라진 게 없지만 지금은 야당으로 변한 새정치연합이 2년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근로자의 일자리와 기업경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더라도 노동자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정책에 대해선 반대부터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인 것이다.
포퓰리즘은 남미 국가들에서 두드러진다. 남미의 대다수 정치 지도자들은 성장보다는 분배나 평등에 정책의 초점을 맞춘다. 아르헨티나는 한 때 경제 규모가 세계 7위인 경제 강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현재는 나랏빚도 제대로 못 갚은 나라로 추락했다.
아르헨티나 몰락의 중심에는 포퓰리즘이 있다. 지나친 복지정책으로 나라 경제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렸다. 일터에서 땀을 흘릴 이유가 적어지면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결국은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한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세계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내부적인 한계도 많아 그만큼 저성장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며 "특히 90년대 일본과 유사한 경제여건들이 많아 '잃어버린 20년'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의 비효율성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 노동시장 및 공공부문 구조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재정확대나 부동산 부양 등을 통해 무리하게 과거의 성장세를 되찾으려는 포퓰리즘을 경계해야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네덜란드, 노동개혁으로 경제발전 이뤄
우리보다 앞서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해 성공한 나라들이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과 네덜란드다. 이들 나라는 노동시장 유연화, 실업인구 축소, 실업복지 하향 조정 등에 성공해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독일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하르츠개혁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꾀했다. 하르츠개혁의 핵심은 실업자 복지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창업활성화 등 세 가지다.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줄이고, 실업부조도 구직 노력을 기울여야만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저임금의 힘든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또 근로자 파견기간의 상한을 폐지하고 1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은 해고 규정에서 예외를 인정해줬다. 신규 창업기업은 임시직 근로자를 최장 4년간 고용할 수 있도록 했고,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세금 혜택도 확대해 다양한 근로 형태를 유도했다.
하르츠 개혁 덕분에 2005년까지만 해도 11.2%였던 실업률은 지난 1분기에는 역대 최저인 4.8%로 떨어졌다.
네덜란드 역시 파트타임 근로자의 고용을 촉진하는 법안을 1990년대 중후반 도입하면서 고용률을 5% 이상 높이며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우리 경제는 청년 고용절벽은 악화되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고용시장은 동맥경화증이 심해지고 있다. 소비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생겨야 하지만 재정 여력이 떨어진 지금 상황에서 경제를 살릴 방법은 구조개혁뿐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조호정 연구위원은 "최근 불황이 장기화되며 기업들의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돼 산업의 고용 창출력이 약화되고 있다. 산업의 고용 수요 확대를 가로막는 경직적 노동시장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며 "근로자보호법으로 인식되는 최저임금제, 정규·비정규직 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등은 노동시장 수급 원리에 맞게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