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정은미기자] '이재용의 삼성'은 변화 대신 안정을, 매니지먼트보다는 기술을 택했다.
삼성은 1일 사장 승진 6명, 대표 부사장 승진 1명, 이동·위촉업무 변경 8명 등 총 15명 규모의 2016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내정해 발표했다.
지난해 말 단행한 2015년 사장단 인사에선 3명의 사장을 승진한 바 있으며 2014년 사장단 인사에선 8명의 사장을 승진 조치했다. 올해 승진자수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2배 늘었다.
재계에서는 올해 삼성 경영진의 대규모 교체를 예측해왔다. 올해 들어 사실상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 하의 실질적인 첫 인사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급격한 변화보다는 미래전략실과 주요 경영진을 유임하면서 인사폭을 최소화하고 안정을 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삼성전자 주요 대표이사의 경우 겸직을 떼고 기존 사업에 변화를 줄 리더를 새롭게 발굴하고 바이오와 면세유통 등 신규사업의 새 수장도 임명하면서 미래 먹거리에 대한 육성 의지를 담았다.
◆미래전략실 강화…삼성전자 3톱 체제 유지
삼성은 2016년 사장단 인사에서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미래전략실차장 등 수뇌부를 그대로 유임했다. 변화보다 안정을 택해 그룹을 이끌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여기에 법무팀장 성열우 부사장과 인사지원팀장 정현호 부사장은 각각 사장으로 진급해 미래전략실의 위상도 더 강화됐다. 미래전략실이 승계작업, 사업재편 등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다지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 왔던 만큼, 앞으로도 이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도 권오현 부회장, 신종균·윤부근·김현석 사장 등 주요 부문 대표를 그대로 유임 조치했다.
대신 권오현 부회장이 겸직하던 삼성종합기술원장에 정칠희 부원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탁했다.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 역시 겸직하던 생활가전과 무선사업부장 자리를 각각 후배 경영진에게 물려줬다.
신임 무선사업부장에는 2014년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으로 부임해 갤럭시S6, 노트5 개발을 지휘하며 갤럭시 성공신화의 한 축을 담당한 고동진 부사장이 내정됐다. 윤 사장이 맡던 생활가전부장은 사장급이 아닌 부사장급이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윤 사장과 신 사장이 각 부문을 총괄하도록 하되, 실무에 밝고 기술안목을 갖춘 경영자들이 이들을 보좌하도록 한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제 2도약을 위한 조직 분위기 일신 차원"이라며 "윤 사장과 신 사장이 그간의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장기 사업전략 구상, 신규 먹거리 발굴 등 보다 중요한 일에 전념토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주사격 삼성물산, 3인+1 체제로
사실상 지주회사인 삼성물산도 변화보다 안정적인 경영진 인사가 이뤄졌다. 삼성물산은 당초 총괄 대표 이사 체제로 전환하는 설이 부각됐다.
그러나 기존 4인 대표이사 체제에서 3인 대표이사 체제로 바뀌었다. 그동안에는 윤주화 패션부문 사장, 김봉영 리조트·건설부문 사장, 최치훈 건설부문 사장, 김신 상사부문 사장 등 4명이 각자 대표이사 역할을 했지만 이 가운데 윤주화 사장만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삼성물산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과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겸직하던 이서현 사장이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을 맡게 됐다.
대표이사는 4명에서 3명으로 줄어든 대신 오너가인 이 사장이 패션부문장을 단독으로 맡게 되면서 '전문경영진+오너' 형태의 구조로 바뀐 셈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삼성물산 리조트건설부문 경영전략사장을 계속 겸직한다.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의 경영진 교체도 없었다. 모두 임명된 지 오래 되지 않아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실적 악화로 부실화된 삼성중공업의 박대영 사장, 삼성엔지니어링의 박중흠 사장 등도 업무를 계속 수행하게 됐다. 새로운 사람을 기용하기보다 현재의 수장들이 어떻게든 이 작업을 마무리해 달라는 게 재계 안팎의 해석이다.
◆오너가 승진은 올해도 유보
오너일가의 승진은 올해도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물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 역시 승진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재용 부회장의 승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투병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회장직을 이어 받는 것이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서현 사장은 겸직하고 있던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을 내려놓고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을 맡는 등 변화가 생겼다. 앞으로 패션사업 육성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서현 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사장의 역할도 변화가 없었다. 김 사장은 지난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으로 옮긴 바 있다.
삼성은 기술을 우대하는 인사원칙과 바이오와 면세유통 등 미래 먹거리나 신규사업을 챙겨 새로운 도약을 꾀하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지난 2012년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를 맡아온 고한승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삼성그룹의 차세대 성장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 분야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인규 호텔신라 총괄부사장 역시 사장으로 승진해 면세유통사업부문장을 맡게 됐다.
삼성은 부사장 이하 2016년 정기 임원인사를 오는 4일쯤 각 회사별로 마무리해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