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부재…4대개혁 물 건너갔다
청와대 '일방적 개혁 드라이브' 여당과 갈등…야당 '세월호 트라우마'에 내홍 거듭
19일로 5·2합의안이 나온 지 보름이상 지났지만 공무원연금개혁은 표류하고 있다. 오는 28일 5월국회 본회의에서 극적 타결 가능성이 점쳐지고는 있다. 하지만 이미 '미봉책'이란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진 상태다. 타결되더라도 개혁의 의미는 사라진다. 공무원연금개혁은 박근혜정부 4대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의 시금석이다. 이대로 봉합될 경우 박근혜정부의 남은 2년은 '개혁의 공백기'로 기록될 거란 관측이 많다. 현재 한국의 정치판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리더십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일방적 리더십은 여권 내 갈등을 부르고 있고, 대안세력인 제1야당은 붕괴 직전이다. 박근혜정부의 거창한 4대개혁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다.
전날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수석 직을 사퇴하며 "공무원연금개혁은 지금 당장의 재정절감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을 위해, 나아가 미래세대에 막대한 빚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이루어졌어야 할 막중한 개혁과제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금개혁을 수용하는 대가로 이와는 전혀 무관한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이나 심지어 증세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애초 개혁의 취지를 심각하게 몰각한 것으로서 국민들께 큰 실망과 걱정을 안겨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강화를 타협의 조건으로 내건 쪽은 새정치민주연합이지만 이를 수용한 쪽은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합의안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재정절감 효과'를 강조했다. 조 전 수석의 비판이 새누리당 지도부를 향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당청 간 불협화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해 7·30전당대회에서 비박(비박근혜)인 김무성 대표가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서청원 의원을 압도적으로 누른 뒤 청와대의 개혁 드라이브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김 대표는 당청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청와대의 개혁 드라이브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해 10월 김 대표가 상하이발 '개헌 봇물론'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청와대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입을 통해 "공무원연금개혁을 연말 내 반드시 당이 처리해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김 대표는 채 10일도 지나지 않아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공무원연금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당초 요구보다 넉달 늦어지는 동안 청와대의 압박은 계속됐다. 김 대표는 지난 13일 합의안 후폭풍이 거센 상황에서 "공무원연금개혁이 시간적 제약을 받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고 인수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안이었기 때문"이라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4월국회에 끝내달라고 했던 것이 정부와 청와대의 강력한 요청"이라고 말했다.
여권 내 리더십만이 자중지란에 빠진 게 아니다. 세월호 합의안으로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물러난 뒤 새정치연합의 내홍은 끊이지 않고 있다. 주류라는 문재인 대표 체제마저 재보선 패배로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이다. 공무원연금특위 위원인 홍종학 새정치연합 의원은 합의안 도출 이후 "우리(새정치연합)는 세월호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며 "우리는 서민을 위해 일하지만 (여당과) 타협을 하게 되면 결국 모든 비난은 우리가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연금개혁도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홍 의원은 "처음부터 실제로 타협을 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새정치연합은 연금문제에 있어서는 '진보 대 보수'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공무원연금 문제를 민간보험회사의 이익과 결부시켜 바라본다. 청와대의 개혁 드라이브를 막아내는 게 최우선 목표다. 새정치연합에게서 개혁안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홍 의원은 특위 위원을 맡으며 "공무원연금이 무력화되면 최소한 진보진영에서 (나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