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도 안되지만 역차별도 안된다." 최태원 SK그룹회장 가석방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이다. 칼같은 결단력이 트레이드마크인 박 대통령마저 이 건에 관한한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식 선문답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실무부처인 법무부도 일부 언론에 보도된 '2월 가석방 대상 제외'에 대해 '근거없는 추측기사'라는 입장만 밝힐 뿐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우유부단한 정치력으로 인해 불필요한 갈등과 국민의 피로도만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최 회장은 14일 현재 수감 중인 기업인 중 가석방을 위한 법정 요건을 충족한 유일한 재벌 총수다.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12년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형기의 3분의 1을 넘어야 한다는 가석방 법적 요건은 이미 넘어섰고 역대 재벌 총수 가운데 최장 기간 수감 중이다.
한국의 기업문화는 총수가 결정권을 쥐고 있다. '오너리스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규모 투자의 가부를 결정해야 할 재벌 총수의 기나긴 부재는 SK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중대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집권 3년차 경제살리기에 성과를 내야 하는 박근혜정부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재 여론은 재벌 총수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청와대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고민은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 발언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박 대통령은 "기업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는 것은 안 되지만 역차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결론을 유보했지만 '원칙주의자'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역차별'이란 단어부터가 심상치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석방이 가능한데도 여론 탓에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여론에 가장 민감한 곳이라면 여의도 정가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형기 80%를 못 채운 기업인 가석방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제 형기의 50%를 채우게 된다. 80%라고 알려진 관행적 요건에는 못 미친다. 김 대표는 최근 기업인의 가석방을 찬성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날 김 대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방법론적으로 이야기했지만 현재로선 어려운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정치인이라면 다를까. 이날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메트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가석방은 법률상 형기 3분의 1을 지나면 가능하지만 법무부는 80%가 경과해야 심사에 올리고 있다"며 "그 기준에 맞추어 하면 된다"고 김 대표와 의견을 같이 했다. 김 원내수석도 기업인 가석방 찬성론을 편 바 있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직 기업인 가석방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았다.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전화통화에서 "당론이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수감 중에 모범수로 행동을 보였다면 모를까 경제활성화를 이유로 가석방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가석방의 경제적 효과 자체에 대해서도 "석방이 된다고 해서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했다.
기업인 가석방에 호의적이던 정치권도 한 발 물러선 지금 최 회장의 앞날은 오직 청와대의 결단에 달린 셈이다. 한편 최 회장이 이달 가석방 심사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 법무부는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해 준 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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