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현대차는 뉴 그랜저와 다이너스티 위급의 '에쿠스'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국산 대형차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9년, 2세대 에쿠스를 선보이고 나서 현대차의 염원이던 북미 대형차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북미에서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아우디, 렉서스가 주름잡고 있는 최고급차 시장에서 에쿠스는 값 대비 가치가 뛰어난 차로 평가받으며 꾸준히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
2세대 에쿠스와의 만남은 개인적으로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데뷔하던 2009년과 페이스 모델이 나온 2012년에 타봤고, 얼마 전 또 한 번의 시승기회가 생겼다. 시승 모델은 VS380이다.
신형은 초창기 모델에 비해 과도한 크롬 장식을 줄이고 은은한 품격을 강조했다. 플래그십 모델답게 차체 비례는 뒤쪽에 무게를 뒀다. S클래스나 7시리즈, A8, LS와 비교해 손색없는 웅장한 품격이 돋보인다.
대시보드는 초창기 T자형 디자인 대신 수평형으로 바꾸고 깔끔하게 정돈했다. 기본적으로 뒷좌석 위주의 자동차지만 운전자 배려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느낌이다.
V6 3.8ℓ 람다 엔진은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조용하다. 뒷좌석에 앉았다면 잠이 스르르 올 정도로 정숙성이 뛰어나다. 초창기 변속기를 버리고 전자제어식 8단으로 업그레이드 된 자동변속기는 각 단에서 걸리는 감각이 확실하면서도 구동이 부드럽다. 기어 레버가 짧아 조작할 때 스포티한 느낌까지 준다.
5m가 넘는 큰 차체를 지녔지만 차체 움직임은 상당히 안정됐다. 다만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의 경우 8843만원짜리 익스클루시브 모델부터 고를 수 있다는 게 아쉽다. 이런 옵션은 모든 트림에서 고를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에쿠스는 V8 5.0ℓ 타우 엔진도 갖추고 있으나 일상적인 주행에서 3.8 엔진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준다. 가속을 시도했을 때 지체현상도 비교적 적은 편이고, 고속으로 치고 나갈 때의 소음도 잘 억제돼 있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고회전 지향적임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능이다.
특히 놀라운 점은 연비다. 에쿠스급의 가솔린 대형차는 연비가 4.5~6.0km/ℓ에 머물기 마련. 에쿠스의 정부 공인 연비도 도심 7.5km/ℓ, 복합 8.9km/ℓ로 크게 돋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에쿠스의 체감 연비는 이보다 훨씬 좋다. 시가지만 달려도 6.0km/ℓ 아래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간선도로나 국도에서 시속 80km 정도로 정속주행을 지속할 경우 10.0km/ℓ의 연비를 한참 유지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경쟁차에 있는 하이브리드나 디젤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렉서스 LS는 하이브리드 버전이 있고, 벤츠와 BMW는 하이브리드와 디젤을, 아우디는 디젤 모델을 갖추고 있음을 감안하면, 에쿠스도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북미에서 경쟁하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쿠스는 여전히 한국 최고의 대형차다. 유럽 고급차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에쿠스가 다음 세대에서 더욱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