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부동산시장 등이 모두 침체돼 투자처를 찾기 힘든데 예금 금리마저 뚝뚝 떨어지니 어떻게 노후설계를 해야할 지 답답합니다". 정년퇴직을 4년여 남겨두고 있는 직장인 곽모(51)씨의 하소연이다.
초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은퇴자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미래 준비 수단인 예금·채권·보험의 예상 수익률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의 기초처럼 여겨졌던 저축성 상품만으로는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할 수 없게 됐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연 5% 이상의 이자를 주는 정기예금 상품이 시중은행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데 이어 연 4% 이상의 정기예금이 전체 수신에서 점하는 비중도 1%대로 급감했다.
이젠 고금리 상품으로 대우를 받는 연 4% 이상 정기예금의 비중은 8월말 현재 1.6%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에는 연 6% 이상 고금리 예금의 비중이 33.3%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상전벽해의 양상이다.
시중은행의 평균 금리는 3.19%로 조사됐다. 기준금리가 3%인 상황에서 연 평균 금리가 3.19%라는 것은 이자 수익이 사실상 '제로'라는 의미다. 이자소득세 등을 제외하면 예금자가 손에 쥘 수 있는 이자는 3%에도 못 미치게 된다.
고금리 예금상품의 비중이 급감한 것은 자금 사용처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데다 시중에 유동자금이 많이 풀려 있다. 여기에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은행도 돈을 굴릴 곳이 없어졌다.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적용했던 저축은행들도 건전성을 위해 BIS(자기자본비율)를 강화하면서 금리를 낮추고 있다. 더군다나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일부 저축은행의 추가 퇴출마저 거론되고 있어 돈을 맡기기도 불안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금금리 의존도가 높은 은퇴자나 저축으로 재테크를 하면서 은퇴를 준비중인 직장인들은 비상이 걸렸다. 올해 하반기 기준금리가 추가 인하되면 정기예금 금리는 연 2%대까지 내려갈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경기침체가 더 심해진다면 한은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수밖에 없다. 예금금리도 따라서 내려간다면 돈 굴릴 곳은 더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자율 하락은 당장 예금이자로 생활을 의존하는 은퇴자에게 날벼락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가계저축률 하락과 부채증가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가계저축률은 3%대로 OECD국가 중 최하위다. 반면 낮은 대출이자로 대출은 빠르게 늘어 가계부채 1000조원의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은 꾸준히 가계저축율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며 "우리나라도 가계 경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저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익분배로 근로자의 소득을 높이고, 사교육과 대학생 등록금을 낮춰 가계부담을 덜어주는 등 정부가 부의 재분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