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학 중 스무살 약관에 17회 사법시험(1975년) 최연소 합격. 25세 때 최연소 검사 임관.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 바닷모래 불법 채취 사건 등을 파헤친 특수 수사의 1인자. 2003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하며 한나라당에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씌운 '국민 검사'. 사시 동기이자 당시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도 줄줄이 기소해 성역 없는 수사의 전범을 보인 '안짱'.
안대희 전 대법관을 말할 때면 따라다니는 화려한 수사다. 그런 그가 지난 주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갔다. 대법관을 그만 둔지 48일 만에 살짝 정치에 한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그러자 '퇴임사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선거에 뛰어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국민검사'가 정치사건 로비스트로 전락했다"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법조계에서도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실망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 싶다. 그는 "정치는 중요한 기능이고 (자신은) 정치를 깨끗하게 하려고 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그가 '정치를 깨끗하게 하는데 기여' 한다면 좋은 일 아닌가. 민주당의 날 선 비난도 사실 그렇다. 그의 평소 행적에 비춰 정치 쇄신을 실현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정국의 흐름이 새누리당에 유리한 쪽으로 흐를 수 있다. 민주당의 비난은 그런 이유로 더 강해진 측면이 있다.
궁금한 것은 '정치 쇄신'의 의지 말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손가락질이 쏟아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치와 연을 맺었다면, 뭔가 다른 계산이 있지 않을까. 제2의 이회창이니,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고 있다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는 일단 "그런 정도의 거물이 아니고 자질도 생각도 없다"며 비켜갔다. 선거가 끝나면 "자유인으로 돌아가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공직자나 교수, 변호사, 시민활동가 등이 이런 저런 '정치적 직함'을 맡으면서 처음부터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결국엔 대부분 정치인으로 명함을 바꿨다. 그도 "지금 입장은 사심 없이 정치쇄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했다. '지금 입장'이라는 단서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대선이 끝나고 그가 자유인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을지 지켜보는 것도 한 재미가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