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연숙(37세)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날 밤 11시부터 8일 새벽까지 전기가 끊어지면서 열대야에 그대로 노출된 때문이다. 이날 김씨가 부녀회에 알아보니 정전의 원인이 아파트 구내설비인 차단기의 오작동 때문이라는 한국전력측의 설명이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그렇지 않아도 아파트 가격이 떨어졌는데 단지내 전기설비 조차 낙후돼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폭염 속에서 아파트 단지에 정전이 빈발해 불편을 겪는 주민이 많다. 더군다나 전기 전문가들이 최근 곳곳에서 발생한 아파트 정전의 주원인은 단지 자체(구내) 설비 불량으로 보고 있다. 아파트 부녀회 등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발생한 정전이 낡은 아파트의 이미지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7일까지 22건의 아파트 구내 정전이 발생해 1만3000여 세대가 피해를 봤다. 정전원인은 아파트 변압기 고장이 12건이었고 차단기 작동 4건, 개폐기 작동 1건, 화재 2건, 기타 3건이었다. 폭염으로 전력 사용량이 변압기 용량을 초과하거나 변압기가 낡아 문제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특히 오래된 변압기는 갈수록 커지는 가전제품 전력소비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년 전에는 변압기 용량을 산정할 때 가구당 1㎾ 면 적정한 것으로 간주했지만 현재는 3㎾로 기준이 높아졌다. 이를 뒤집어 보면 20년 전에 지은 아파트는 현재 필요한 용량의 3분의 1만 감당하는 셈이다. 전국의 아파트 단지 1만5670개 가운데 10년 이상 된 곳은 7924개로 절반가량이며 20년 이상 된 아파트도 약 9%에 달한다.
한전은 이들 아파트가 세대별 공급 전력을 확인해 적정 용량을 갖추도록 변압기를 증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전 관계자는 "한 세대에 3㎾가 할당될 수 있도록 변압기 용량을 유지하고 철저한 자체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