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김영사 펴냄) 시리즈는 지난 25년 동안 1500만부 이상이 팔린 국민 만화이다. 1987년 초판 출간 이후 시대와 세상이 변했다. 최근 '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로 다시 태어났다.
출판사는 '역사는 항상 새로이 쓰여진다'는 명제하에 3년여의 기간을 투여해 시리즈 전면 개정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유럽편 6권의 원고를 폐기하고, 1만2000컷에 달하는 원고를 완전히 새로 그렸다.
서울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이원복 교수는 "유럽을 바라보는 시각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한 격세지감이 있는 시대였다"며 "(개정판에는) 서구적인 가치가 최우선이 아니라는 것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초판의 시각은 유럽을 부러움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본 반면 개정판에서는 이미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한층 높아진 우리의 안목과 시각에서 다시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초판을 집필할 때만 해도 서구적인 가치가 보편적인 가치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2000년 초부터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정말 그런가하고. 이후 리먼브라더스 사태·금융위기를 보면서 서구적 가치가 최우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개정판에) 제일 먼저 반영했다"고 말했다.
초판이 쓰여진 80년대 초는 이 교수의 30대 시절이었다. 그때의 그는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동양의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보고 경험한 유럽은 한없는 동경과 부러움으로 가득찬 세상이었다. 하지만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선진국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부러워하고 배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경쟁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대상이 됐다. 이번 개정판이 세계 경제 10위권 선진 국민으로서의 성숙한 시각으로 편견없이 바라본 세계의 객관적인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나아가 이 교수는 서구적 가치가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고 봤다. 그는 "서양의 쇠락은 필연적이다. 스페인이 흔들거리는데 (이것이) 이태리로 가고 유럽으로 간다. 불가피하다. 식민지를 놓치면서 서서히 서양이 쇠락권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은 2차대전 끝나자 마자 영국과 프랑스가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식민지를 가장 많이 갖고 있던 나라인데, 식민지가 무너지면서 그들의 부를 축적할 기반이 없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동양적 가치가 재발견되고, 부각되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가능했다. 이 교수는 "유럽은 공존의 의식이 없었다. 먹거나 먹히거나였다. 반면 동양은 관용이 하나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뺏는 것이 아니라 공존이 되는 것이다. 서양의 가치가 아시아의 가치로 대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현재 14권까지 출간됐다. 올해 12월 '스페인' 편으로 15권 시리즈가 마무리된다. 이 교수는 "이후에는 지역별로 역사를 묶어내는 '가로세로 세계사' 집필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