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달성한 여자컬링대표팀이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자신했다. 척박한 국내 현실을 극복하고 기적의 순간을 일군 이들은 "컬링은 섬세한 기술이 요구되고 머리 싸움이 치열하다. 하지만 이번 캐나다 세계여자컬링세계선수권을 통해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 다음주 국가선발전 올인
태릉빙상장에서 만난 경기도 체육회 소속 이현정(34)·신미성(34)·김지선(25)·이슬비(24)·김은지(22)는 다음주 열릴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훈련에 정신이 없었다. "세계 4강까지 올라갔는 데 국내 선발전 쯤이야 누워서 떡먹기 아니냐"는 질문에 밝았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장 큰 복병이 있어요. 바로 얼음이죠. 컬링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은 국제대회 수준의 빙질을 만드는 기술이 아직 부족해요. 얼음이 완벽한 수평을 이루고 부드러워야 하는 데 한국의 얼음은 거칠어요. 이렇게 되면 선수들의 변별력을 측정하기가 어려워지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면 소치에서의 메달 꿈은 멀어진다. 훈련할 장소와 지원비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발전에 운명이 걸려 있는 셈이다.
◆ 눈치 봐가며 컬링 훈련 매진
중국에서 어학 연수중이었던 주장 김지선과 컬링을 접고 유치원 보조교사로 한때 전업했던 이슬비가 2009년 합류했다. 막내 김은지가 지난해 들어오면서 팀이 꾸려졌다.
정영섭 감독, 최민석 코치와 한솥밥을 먹으며 피나는 훈련을 거듭했다. 팀워크는 환상적으로 좋았지만, 문제는 연습장과 장비였다. 국내에서 훈련이 가능한 곳은 태릉과 경북 의성 뿐.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의 눈치를 봐가며 도서관의 메뚜기족처럼 훈련하기 일쑤였다.
또 외국 선수들은 경기 후 브러시 헤드를 바꾸는데, 빨아서 다시 썼다. 외국 선수들이 버린 헤드를 주워 사용한 경험도 있다. 물론 지금은 여건이 다소 좋아졌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씁쓸하다.
◆ 5인방 평창 올림픽까지 함께
올 3월 캐나다에는 자비를 들여 3주나 일찍 갔다. 현지 빙질을 충분히 익히기 위해서였다. 호텔 숙박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민박을 하며 직접 밥도 지어먹었다. 그 마저도 경기도 체육회의 지원회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이를 갈았다.
체코와 첫 경기에서 3-6으로 패했지만, 최강 스웨덴을 9-8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이탈리아와 컬링 종주국 스코틀랜드, 미국, 덴마크 등을 연이어 물리치며 6연승을 달렸다. 대회 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첫 도전인 2002년 9전 전패, 2009년 3승8패, 2011년 2승9패를 기록했던 한국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아쉽게 플레이오프에서 스위스에 6-9로 패하고, 3~4위전에서도 홈팀 캐나다에 졌다. 그러나 세계 언론은 이들의 예상밖 선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경이로운 시선을 보냈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힘주어 말했다. 소치와 2018 평창 올림픽에서의 메달 수확이 목표다. 요즘도 가끔씩 스위스와의 준결승이 생각나 아쉽다는 컬링 여전사들은 "경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생긴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운동, 언젠가는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 4강 신화 쓴 컬링 5인방
김은지(90.1.23) 포지션 리드. 팀 막내로 성격 밝고 애교가 많다. 궂은일 도맡아 한다. 취미는 자전거와 음악. 유머 있는 남자가 좋고, 외모보다 능력 우선.
신미성(78.4.2) 포지션 세컨. 링크 밖 주장이자 총무. 엄마처럼 성격이 꼼꼼하고, 후배들 야단칠 때는 무섭다. 소치 올림픽을 위해 2세 계획까지 미뤘다.
이현정(78.9.27) 백업 멤버. 집안의 아빠처럼 야단 맞은 후배들 잘 다독인다. 애엄마라 이해심이 많고, 수영을 즐겨한다. 소치까지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김지선(87.6.27) 포지션 스킵. 팀의 에이스이자 주장. 정신력과 작전 구사 능력 뛰어나다. 단전호흡이 취미. 눈이 귀엽고, 일편단심형 남자면 무조건 OK!
이슬비(88.6.25) 포지션 써드. 기술과 파워를 갖췄다. 경기장 밖에서는 여성스럽고 요리를 좋아한다. 존경할 남자 원하고 웃을 때 잇몸이 보이면 안된다.
사진/도정환기자 doremi@